매일신문

[야고부] 담배 소송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그는 공군을 격려하려고 전투기에 탑승할 때에도 고집을 부려 비행 중 산소마스크에 구멍을 뚫어 시가를 피웠다.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도 시가와 담배를 사랑했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의 정조가 대표적인 골초였고 효종의 장인이었던 장유 역시 담배를 예찬했다. 시인 오상순은 눈 뜨고 잠잘 때까지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는데 '금연'이라는 말 자체에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담배는 남아메리카의 고원지대가 원산지로 알려졌으며 16세기 중반 유럽에 전파된 후 급속도로 퍼졌다. 그러나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영국의 제임스 1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무라드 4세 등은 담배를 매우 싫어했다. 제임스 1세는 세계 최초로 금연구역지정법을 만들어 월터 롤리라는 인물이 이를 어기자 참수했다. 무라드 4세는 흡연자들을 색출해 무려 3만여 명을 처형했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광해군 때 담배가 들어왔으나 광해군이 담배를 혐오해 자신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담배의 유해성을 경고한 것은 1878년에 영국의 찰스 드라이스데일이라는 의사였다. 그는 담배에 포함된 알칼로이드와 니코틴이 생명을 위협할 만큼 독성이 강하며 간접흡연도 해롭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70여 년이 지나서야 공론화되었다. 1953년 미국에서 폐암 사망자의 유족이 담배 회사를 겨냥해 처음 소송을 제기했고 1962년에는 영국왕립내과의사회가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년에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폐암 발생 등으로 말미암은 막대한 진료 비용을 환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처음 담배 소송에 나서게 되며 배상 금액이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1999년부터 흡연 피해자나 유족 등 개인이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2002년에 필립모리스사가 폐암을 앓는 여성 흡연자에게 무려 280억 달러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받는 등 담배 회사가 패소한 판결이 많았다.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은 흡연 폐해의 경각심을 알리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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