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느 공연장 종사자의 자술서

극장에서 일하며 가장 기쁜 순간 중의 하나는 더 이상 팔 좌석이 없을 때이다. 지난해 단 한 차례밖에 기록하지 못한 전석 매진이 올해는 모두 4건의 공연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 3번은 클래식 공연이었고, 수성아트피아가 자랑하는 명품 공연들이었다. 우리 극장에서 올려지는 모든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최상으로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우리 이름을 걸고 하는 기획공연에서만큼은 수준과 완성도에 부족함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명품공연이라 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예술적 수준이 보장되는 작품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자술서를 쓰는 이유는 전석 매진을 기록한 명품공연들의 수준과 완성도가 우리의 확신에 보답해주지 못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지난 5월, 공연을 2주 앞두고 표가 다 팔린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공연, 전국을 순회하다 대구를 찾은 이들은 리허설 때 협주곡만 맞춰보고 공연에 들어갔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반 정도 크기에, 울림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우리 용지홀에서 늘 하던 대로 90명의 오케스트라를 앉혀놓고 운명 교향곡을 휘몰아쳤다. 예민한 관객들은 시끄럽기만 했다는 불평을 늘어놓고 돌아갔다. 공연 하루를 남겨놓고 결국 매진된 미샤 마이스키의 리사이틀, 클래식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전성기를 넘어섰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그래도 대가의 아우라는 여전하겠지라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무대는 올라갔다. '가족이 빚어내는 환상의 호흡'이라고 홍보를 했건만 정작 딸 '릴리'는 아버지 발치만큼도 못 따라가는 연주 실력 때문에, 많은 이들의 지적을 받았다.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일찌감치 매진된 파리나무 십자가 소년합창단, 리허설 모습을 보며 '앗! 얘들은 1군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이 뒷덜미를 때렸다. 결국 바뀐 프로그램으로 인한 관객의 항의에 진땀을 빼야 했고, 24명이 들려주는 천상의 하모니가 아니라 제일 꼬맹이 한 녀석이 뽑아내는 천상의 소리가 겨우 공연을 살려냈다. 물론 1천 명이 넘는 관객들은 아티스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사인을 받기 위해 로비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내년 3월 말이 공연인데, 지난 11월 티켓오픈 사흘 만에 표가 다 팔린 예프게니 키신처럼 완벽 그 자체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를 대구에도 자주 모셔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한물간 스타도 거장, 전설 등의 수식어로 적당히 치장해가며 관객 앞에 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래도 지난 9월, 조르디 사발옹처럼 오직 '비올'이라는 악기 하나로 700명 남짓한 관객에게 '인간의 목소리'와 '음악의 즐거움'을 안겨주며, 축복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아티스트가 있어 다행이고 고마울 따름이다.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fur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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