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무더기 낙하산, 공기업 개혁 접겠다는 소리

대선 승리를 위해 '희생'한 동지들을 배려해 달라는 새누리당의 읍소에 청와대가 적극 화답하고 있다. 마사회, 지역난방공사 등 대형 공공기관의 수장에 '친박'을 포함한 대선 공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더니 이제 공공기관의 2인자 자리로 불리는 상임감사 자리를 놓고도 똑같은 공수(空輸)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선 공신이 주축이 된 공정대(空挺隊)가 상임감사로 투입될 예정인 공공기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1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정우택'유기준 최고위원은 각각 10월과 11월,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대선 1주년 기념식이 있었던 지난 19일 대선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신문고 두드리기는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한국도로공사, 한국마사회 등 굵직굵직한 공공기관 사장 자리를 친박과 대선 공신들이 꿰찼다.

결국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은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였던 것이다. 아니면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기애(自己愛)의 고질적 재발이거나. 무엇이 됐든 현실은 국민에게 이렇게 조소(嘲笑)하는 듯하다. "순진하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이래서는 '파티는 끝났다'는 서슬 퍼런 공공기관 개혁 의지는 '공갈포'로 들릴 수밖에 없고, 대통령이 던져놓은 '비정상의 정상화'란 화두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혁명은 소를 죽여서라도 소뿔을 바루겠다는 것이지만 개혁은 소를 죽이지 않고 소뿔을 바루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우'(殺牛)를 피하고 '교각'(矯角)을 하려면 무엇보다 개혁 주체가 개혁 대상보다 도덕적인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자기희생이다. 내 눈에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끌만 탓해서는 남을 설득할 수 없는 법이다. 공공기관 사장과 감사 자리를 꿰차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철밥통'을 깨라는 소리가 먹힐 리가 없다.

공기업의 하늘을 까맣게 덮고 있는 낙하산을 보면서 국민은 이제 슬슬 희망과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시중 여론은 "박근혜정부는 잘할 것이다"에서 "잘해야 한다"를 거쳐 이제는 "잘할 수 있을까?"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도 귀가 먹지 않았다면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런 자문을 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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