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집시(Gypsy)는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 민족이다. '꾀죄죄하고 더럽고 냄새 나는' 민족의 이미지에 '자유롭고 분방한' 삶의 이미지가 덧칠돼 있다.
정작 그들이 사는 유럽에서 집시의 이미지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집시는 오랜 기간 유럽에서 소매치기와 도둑질, 사기, 유괴 등 온갖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유대인과 달리 일정한 거주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이 컸다. 정처 없이 유랑하는 그들은 유럽인들에겐 박해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히틀러는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대상으로 유대인과 동성애자에다 집시를 끼워 넣었다. 유럽 곳곳에서 집시들을 잡아다 죽였다. 피해자 수는 50만 명이다, 100만 명이다 추정만 될 뿐이다. 유대인과는 달리 실질적인 피해자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역시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백배사죄하지만 집시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오늘날 집시란 말은 적절치 않다. 로마(Roma)가 정당한 표현이다. 유럽의회(EU)가 경멸의 의미가 강한 '집시'라는 명칭을 버리고 공식적으로 '로마'란 명칭을 쓰기로 한 것이 지난 1995년이다. 로마란 그들 스스로의 언어로 인간 또는 사람이란 뜻이다. 로마제국의 후예라는 뜻이 아니다. 이 명칭엔 평범한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로마의 염원이 담겨 있다.
집시가 로마가 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로마는 여전히 유럽에서 애물단지다. 로마란 명칭을 얻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로마는 유럽 전역에 약 1천200만 명 정도가 퍼져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루마니아에 190만 명이 살고 헝가리와 불가리아에 각 7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올 1월부터 EU는 회원국 중 최빈국에 속하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이주민들에게도 국경과 노동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이후 서유럽 국가들의 눈이 로마에 쏠리고 있다. 이 관심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서유럽 국가들이 국경 개방 후 느끼는 감정은 공포에 가깝다. 로마에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긴다거나 치안 유지의 어려움에 대한 공포다. 그러니 구걸과 범죄를 일삼는 로마는 자연재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난무한다. '집시들을 가스실로 보내자'는 섬뜩한 말도 나온다. 그래도 로마 나라를 만들자는 말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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