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이 시대의 역린

4월은 이제 잔인하지 않을 거라 소망했지요. 먼 나라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가 해마다 4월의 꿈을 잔인하게 만드는 거로 생각했었지요. 4월에 대한 선입견을 던져준 시 '황무지'. 하지만, 올해 4월은 정말 잔인하고 잔인해서 그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요. 온몸이 바짝바짝 마르고 정신은 어디 둘 곳도 없이 황무지가 돼버린 듯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투어 피던 봄꽃들에 취해있던 사람들이 순간, 지는 꽃들처럼 망연자실해져 버린 이 잔인한 봄날. 누구에게도 말 걸기 어렵고 그저 속보를 통해 들려오는 진도 팽목항의 상황에 귀 기울이며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이 잔인한 봄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라 변명을 해야 할까요. 이제 꽃봉오리같이 어여쁘게 올라와 환하게 나비를 맞고 하늘을 치받칠 꿈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군요. 뉴스를 보는 것조차 두려워 애써 외면하지만 그래도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아이들의 생환소식이라도 있을까 짬짬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곤 했지요.

그런 와중에 소위 정치를 한다는 어른들은 해서는 안 될 망언과 경거망동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군요. 그들에게 정치는 출세와 권력에 대한 기반일 뿐, 국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그들에게 외쳐대고 싶군요. 그들의 안중에 국민이 있기는 있는 건지.

곧 개봉될 영화제목인 '역린'이라는 단어가 확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답답하고 기가 막힌 현실을 보면서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말을 국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역린'(逆鱗)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용의 턱밑에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군요. 임금 등 절대 권력자의 신임을 얻었거나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의 노여움을 사면 응징을 면하기 어렵다는 뜻이군요.

물론 영화는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즉위하고 나서 1년 만에 벌어지는 왕의 암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역린'의 배경은 '정유역변'이라는 사건으로 '정조시해 미수사건'으로도 알려져 있군요. 영화에서라면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이겠지요. '짐이 곧 국가'라는 왕정시대가 아닌, 지금 21세기 분명히 민주주의국가라면 국가의 주체는 '국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시대의 '역린'은 '국민의 분노'로 봐야겠지요.

대다수 국민의 신임을 얻고 국민대표로서 국가 살림을 맡는 사람들을 뽑는 선거를 통해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나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처음의 마음대로 국민의 안위를 위해 책임을 다했다면 이번 같은 황망한 일이 되풀이 되겠나 싶군요. 적용의 폭이 조금은 과한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분명 이 상황은 이 시대의 '역린'을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단원고 정문에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추모와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촛불이 켜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에 꺼질까 종이컵에 꽂아두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슬프게도 그들은 몇 사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사고의 진짜 원인은 흐지부지 가려버리겠지요. 전 국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려도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겠거니 치부해버리겠지요. 아이들이 겪을 어른들에 대한 불신도 크면 다 알게 되고 치유된다 하겠지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도, 서해페리호가 침몰했을 때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줬으니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겠지요. 지금까지 국민이 겪어온 것이 그러하니 그렇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겠지요. 하지만, 이 시대의 '역린'은 크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여전히 자신들의 처세에만 눈이 먼 위정자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슬프고 잔인한 2014년 4월, 그러나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적 같은 생환소식을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

권미강/대전문학관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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