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경보기 고장 '3일 울화통'

서울 디지털 장비사용 , 제조업체만 수리 가능 화재땐 무용지물

대구의 아파트 디지털 화재경보수신반 상당수가 수도권에 있는 업체의 제품이어서 고장이 나면 바로 수리가 어려워 화재 시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있다.

화재경보수신반은 불이 난 가구의 위치를 관리사무소에 알려주는 장비로 화재 시 신속한 조치를 돕는다. 하지만 이 장비의 상당수가 수도권 소재 업체의 제품으로 대구에는 이를 수리할 인력이 없어, 고장이 나면 본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고장 접수 시 본사 직원이 대구를 찾아 수리하는 데까지 보통 2, 3일씩 걸려 이 기간 동안 화재경보수신반이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어돼 모니터에 화재 위치가 표시되는 최신식 화재경보수신반이 설치돼 있다.

이 수신반은 경기도의 P사가 만든 것으로, 고장 시 본사에 연락해 수리하게 돼 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오모 씨는 "최근 모니터와 배터리를 교체하려 서비스를 요청했다. 배터리 등 손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은 택배로 이틀 만에 받아 관리사무소 직원이 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니터는 본사 직원이 오기까지 사흘을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달서구 유천동 한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시설관리팀장은 "수도권 업체가 기술인력의 스케줄을 파악한 뒤 출장이 가능한 수리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며 "모니터가 고장 나거나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긴다면 기사가 올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른 업체에 수리를 맡기기도 어렵다. 이전 아날로그식은 기계만 수리하면 돼 소방설비 전문업체가 대신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식 기계는 프로그램 설계 방식이 제조사마다 달라 만든 회사가 아니면 수리가 힘들다.

그나마 지사가 있는 회사의 제품이라면 사정이 낫다. 대구 동구 신천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서울 D사가 만든 화재경보수신반이 설치돼 있는데, 대구 등 여러 지역에 지사가 있어 빠른 수리가 가능하다. D사 대구지사의 수리 기사는 "수도권에 본사를 둔 화재경보수신반 제작 업체 가운데 지역 지사가 있는 곳은 몇 곳 안 된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업체들에 따르면 화재경보수신반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수도권 소재 대기업 건설사들이 아파트 신축 때 수도권 업체의 화재경보수신반을 도입하고 있다. 또 대형 업체가 만든 화재경보수신반은 입찰가가 낮아 이를 선호하는 아파트들이 많다.

아파트 관리업체 관계자는 "대구에는 디지털 화재경보수신반 제작 업체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대기업 건설사들은 평소 애용하던 수도권 유명업체의 값싸고 검증된 시스템을 이용하게 된다"며 "대구 건설사들도 신축 아파트에 수도권 업체가 만든 제품을 쓴다"고 했다.

실제로 서한 이다음, 화성 파크드림, 우방 유쉘 등 대구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 역시 수도권 업체가 만든 디지털 화재경보수신반이 설치돼 있었다.

경기도의 P사 관계자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기술 인력만 있으면 되는 만큼 애써 지사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며 "고장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파견할 기술자를 선정하는 편이지만 갑작스럽게 출장을 보내야 하는 만큼 스케줄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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