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과 장모님은 62년을 함께 사셨다. 두 분 모두 여든을 넘길 때까지 해로하신 걸 보면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다. 20여 년을 곁에서 지켜봐 왔지만 두 분이 그렇게 알콩달콩한 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경상도, 그것도 남도의 남정네들이 거개 그렇듯 장인이 장모에게 살가운 말씀을 건네는 걸 별로 보지 못했다.
장모님은 늘 장인의 주취(酒醉)를 문제 삼아 타박을 주는 것이 일상사였고, 장인은 그런 타박에도 꿋꿋이 60여 년을 마셔오셨으니 두 분 사이의 대화라는 게 잔소리와 무시, 거의 그런 식이었다. 그러니 부부간에 무슨 사랑스러운 대화가 오갈 수 있겠는가.
장모님이 다른 점에서 장인을 몰아세우는 일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술 문제만큼은 양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셨는데도.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장모님의 '노래'가 "저노무 술 공장엔 와 불도 안 나노?"였단다.
그렇게 매양 티격태격하면서도 두 분이 따로 떨어져 계시는 모습 또한 별로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금슬이 좋았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늘에 실이란 말이 두 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길눈이 워낙 어둡고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장모님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런 장모님을 챙기는 장인의 무던함 덕도 있었으리라.
그런 두 분을 떨어져 살게 한 사건이 몇 년 전 생겼다. 장모님이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그 증세가 점점 심해져 몇 달 전엔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영감님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던 분이었는데, 그렇게 몸이 안 좋으면서도 입원하기를 한사코 거부하시던 분이었는데. 두 분이 한 달 넘게 따로 살아야 했던 때가 내 기억엔 아직 없다.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처가에 내려가 장인을 모시고 장모님을 찾았다. 평소 별로 말이 없던 분이 병원이라고 금세 말문이 열리겠는가. 몇 마디 인사 뒤 그냥 묵묵히 병상에 누운 아내를 바라만 보고 계실 뿐이다. 그런데 장모님이 당신의 딸에게 말을 건네신다. "야야, 니 아부지한테 내 손 한 번 잡아보라 캐라."
남편이 바로 머리맡에 앉아 있는데 딸한테 말 심부름을 시키시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 사시면서도 몇 번이나 손을 잡아보셨을까. 뒷짐을 지고 휘적휘적 내닫는 남편 뒤로 머리에 짐을 인 아내가 짧은 다리로 뒤쫓는 그림, 그게 바로 두 분이 살아오신 세월이 아니었을까. 남편의 손길을 기다리면서도 직접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는 분들이다.
딸에게서 말을 건네받은 장인이 머쓱하게나마 손을 꼭 잡아주신다.
부부의 날이라고 해서 별스러운 이벤트를 한다거나 하지 못했다. 당최 체질상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플 때, 아내가 아플 때 손을 잡아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부부로 산다는 것,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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