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 거인에게 길을 묻다] 제3부 김수환 추기경 7)나눔과 희생의 리더십

각막 주고 가신지 5년…정기기증 신청자 급증 '사회의 빛으로'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10년 지속되는 권세가 없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성한 것이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쇠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 속의 수많은 국가와 기업, 가문이 이 같은 사실을 보여주었다. 선왕의 훌륭한 리더십이 후대까지 빛을 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창업주의 리더십이 2대, 3대까지 이어지는 경우 역시 드물다.

이처럼 일반적인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세월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는 것과 달리 영성을 바탕으로 한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때 자신의 각막을 앞 못 보는 이에게 남겨 빛을 선사했다. 이에 앞서 추기경은 1990년 서울성모병원에서 "앞 못 보는 이에게 빛을 주고 싶다"며 '헌안(獻眼)서약서'를 작성하면서 희망의 씨앗 심기, 장기기증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추기경이 떠난 지 5년,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기 기증 희망자는 2013년 100만 명을 넘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기기증자가 한 해 18만 5천 명으로 급증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 수는 인구 100만 명당 8.4명으로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가파르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 선종 후에도 끝나지 않는 리더십

2014년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5주기(2월 16일)를 맞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희망의 씨앗 심기' 장기기증 희망 등록 캠페인을 펼쳤다. 각막을 기증한 김 추기경의 유지를 살려 장기기증 운동을 확산하려는 생명나눔운동이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와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주관하고, 서울성모병원영성부가 후원한 당시 행사는 선종과 함께 각막을 기증한 김 추기경의 유지를 살려 장기기증 운동에 동참하자는 생명나눔운동이었다.

당시 행사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각막을 기증한 후부터 장기기증 바람이 사회 전반에 걸쳐 불기 시작했으며, 장기기증은 숭고한 '이웃사랑의 표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추기경이 선종하던 해인 2009년 4월 명동대성당 앞 주차장에서 '한마음한몸 장기기증센터'를 열었다. 장기기증 상설 신청소를 개설함으로써 김수환 추기경의 숭고한 나눔 정신이 이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한마음한몸 장기기증센터는 명동을 찾는 시민들의 장기기증 상담과 신청에 편의를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해왔다.

센터에는 장기기증 전담 직원들과 간호사, 봉사자들이 상시 대기하며, 장기기증 콜센터(02-3789-3488)도 마련해 장기기증에 대한 각종 문의사항도 안내한다.

당시 센터 개관식에 참석했던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마리아) 장관은 "상설 센터 개관으로 장기기증운동이 생활실천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추기경의 각막기증으로 장기기증이 단순한 행사로 끝나지 않고, 생활 속에 하나의 실천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정신으로 시작한 장기기증 캠페인은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기업, 군대 등으로도 퍼져 나가고 있다. 해병대의 장기기증캠페인에 이어 국방부 역시 생명나눔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한 보건복지부를 시작으로 법무부, 환경부, 외교통상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해양부 등 여러 정부부처도 장기기증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장기기증 참가도 부쩍 늘었다. 한국장기기증원(KODA/원장 하종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뇌사자 장기기증은 2004년 86명에 불과했으나, 2009년 261명, 2010년 268명, 2011년 368명, 2012년 409명, 2013년 416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3년 416명의 뇌사자 장기기증을 권역별로 보면 서울'경기'인천'강원'제주 지역이 262명, 충청'전라 지역이 66명, 영남 지역이 88명으로 장기기증이 특정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이 종교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장기기증확산이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이식과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역할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한국장기기증원, 새 생명 장기기증운동본부, 한국간이식인협회, 생명나눔실천본부, 기독교 장기재산기증협회,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 희망의 씨앗 등 수많은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한편 뇌사기증자 숫자가 416명으로 크게 늘었고, 뇌사자 장기이식도 1천354건(각막 제외)이나 되지만 이식 대기자는 2013년 현재 2만 1천901명이어서 우리나라의 장기기증은 아직도 부족한 실정이다.

▷ '사랑과 나눔 공원'으로 부활

복원사업이 한창인 김수환 추기경의 군위 생가는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의 부활과 영속을 알리는 장소가 될 전망이다. 경상북도와 군위군이 2012년부터 국비 등 121억원을 투입해 군위읍 용대리 일대 2만㎡ 터에 조성 중인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은 ▷생가(36.5㎡) 및 옹기골 복원 ▷추모 체험관 ▷추모 산책로 ▷수련관 ▷잔디광장 등으로 구성되며 김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이곳은 김 추기경이 다섯 살 되던 해 군위로 이사 온 뒤 군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족들이 대구로 이사할 때까지 어린 시절 7년을 보냈던 장소다. 경북도와 군위군은 김 추기경의 생가와 함께 추기경의 아버지가 이웃과 함께 옹기를 굽던 옹기굴(길이 20~30m)을 복원해 어려웠던 시대상과 추기경의 생활철학이 형성된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또 김 추기경과 관련된 기록과 영상자료 등을 전시하는 추모체험관, 김 추기경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추모 산책로, 폐교인 군위초교 용대분교를 리모델링해 청소년들의 배움터로 제공할 수련관 등도 건립할 예정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살림이 어려웠는데도 어머니는 본당 신부가 방문할 때면 도배를 말끔하게 해 공소(公所: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교회)로 사용하도록 해 손님들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 생가와 용대리 일대에 조성되는 공원은 사랑과 나눔, 용서와 화해 등 김 추기경의 삶과 생활철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천주교 성지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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