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진정한 아름다움은 존재할까?…그레이트 뷰티

40년 전 쓴 소설로 평생 걱정없던 남자, 65번째 생일에 첫사랑 부고 듣는데…

2014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호기심을 자극했던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이탈리아의 40대 젊은 기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2008년에 '일 디보'라는 작품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이탈리아 영화계를 짊어질 새로운 피로 기대를 모았다.

기대를 잔뜩 거머쥐고 영화를 접한 관객 중 놀란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스토리가 잡히지 않는데다, 한 때의 성공으로 흥청망청 잘 사는 노인을 보는 것도 별로 유쾌하지 않고,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 상징적 이미지들의 홍수는 집중력을 자꾸만 흐트러뜨릴 것이다. 각종 화려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떠보지만 속수무책으로 꿈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히 여타 영화들과는 다른 관람 방식을 요한다. 영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즈음, 노래가, 풍경이, 인물 내면의 목소리가, 르네상스의 고향 로마의 과거를 품은 현재가, 그리고 마침내는 사그라져 가는 인간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대기가 희미하게 감지될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눈앞과 코끝에 잔상과 향취로 남은 머나먼 로마가 이상스럽게도 오래도록 느껴질 것이다.

'그레이트 뷰티'의 작품성은 충분히 논란을 일으킬만하다. 북미권의 대표적 영화 비평지인 '필름 코멘트'의 평론가 별점 평가를 보면, 별 1개에서 5개 만점까지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국내 개봉의 뚜껑을 열고 보니, 난해한 영화라는 평가와 최고의 예술성이라는 평가로 나뉘며, 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봉 4일 만에 1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 수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영화는 어렵지만 아름답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과 귀의 감각을 일깨우는 달콤함이 싱싱하게 스크린 위로 배어난다.

영화의 주인공 젭은 40여 년 전 쓴 소설책 한 권으로 평생 놀고먹고 사는 로마 사교계 최고의 유명인사다. 매일매일 파티에 참석하며 휘황찬란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65번째 생일파티가 지나고 첫사랑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젭은 이후 잊고 있던 과거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젭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심리적 여정에 나선다. 젊음과 나이 듦, 삶과 죽음, 영원히 남는 예술과 찰나적인 아름다움, 과거와 현재, 실재와 환상 등의 이항대립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플롯이 전개된다.

젊어서 성공한 노년의 젭은 내면의 발육이 정지된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어, 그에게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성공의 문지방 뒤에 존재하는 것이란 거대하고 생생한 허무뿐임을 알게 된다. 유명하고 부유하며 안락한 존경받는 인생이지만, 젭은 존재론적 재앙으로부터 오는 허무함을 극복하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리고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게 된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스타일은 한 신의 길이를 길게 늘이지만,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깃털처럼 가볍게 유영하며 공간과 인물을 포착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를 더욱 화려하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케 하는 힘을 지닌다. 모든 장면이 뮤직비디오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음악과 영상이 유려하게 이어지는데, 음악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좋을 정도로 한 편의 아름다운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클래식 음악에서 뉴에이지, 교회 합창곡에서 사이키델릭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의 향연은 귀를 호강시킨다.

젭은 신성함과 세속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로마를 상징한다. 로마는 영화에서 중요한 주인공이다. 명품으로 치장한 댄디한 외모를 가진 젭의 마음은 그동안 허영으로 가득했다. 500년 역사의 신화적 아우라를 지닌 도시 로마, 그리고 현재의 덧없음은 늙어가는 젭이 첫사랑의 이미지를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로마 곳곳을 떠도는 모습에서 묻어난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위대한 순간이 스러져가고 있는 현대의 로마를 냉정하게 바라보듯이, 그는 자신의 젊음과 늙음, 세속적 성공과 예술의 영원성을 깨닫는다.

이탈리아의 만연한 무기력과 타락의 정조를 거대한 난파선에 비유하려 했다는 소렌티노 감독은 로마를 "경이로움과 위대함의 안식처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도시, 속물적인 사람들의 출현에도 스스로 생존해온 도시"라고도 칭했다. "삶은 모두 소설과 같은 허구이며,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라는 셀린느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영화의 도입부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영화는 과거와 삶이 지닌 무거움과 슬픔을 아름다움과 예술을 애타게 찾음으로써 이겨내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을 표현하는데, 이는 달콤하고 쌉싸래한 모험담이다. 구제 불가능의 세속성을 과잉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영원성과 절대미라는 형이상학적인 허무함으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영화는 아름답고 컬트로 남을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이후 세계적인 시네아스트를 찾아 헤맨 이탈리아 영화계로서는 귀한 보석을 얻은 셈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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