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관상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사람 얼굴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관상으로 흥미가 자연스레 이동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가톨릭 신자로서 이 책을 읽어도 되나'라는 죄책감이 조금 들면서도 사람 얼굴을 보면서 분석해보고 또 대충은 들어맞는 듯도 하여 통계학이라고 생각하고 재미로 책을 조금씩 읽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환자의 얼굴을 보고 인생을 읽기도 합니다. 대충 맞기도 해서 뿌듯할 때도 있습니다. "코가 두툼하여 살집이 있고 콧방울도 좋으니 부자가 되실 겁니다"는 말 한마디에 20대 환자가 기분 좋게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두툼한 복코가 콤플렉스였는데 제 말 한마디에 큰 위안을 받았던 것이지요. 메스와 실을 쓰지 않고도 말 한마디로 환자의 콤플렉스를 조금은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생각에 관상이 참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눈썹이 붙어 있는 경우(미련하다고 할 때 '미련'이 눈썹이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의 환자를 보면 "눈, 코를 손대기보다는 간단하게 제모를 하시면 인상이 훨씬 부드럽고 밝아질 것입니다" 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관상을 배우면서 좋은 점은 제 두 아이를 보면서 '귀하게 자랄 것이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마추어 관상가인 제 눈에도 관상이 참 좋습니다. 꾸짖을 때도 "얼마나 훌륭하게 크려고 이렇게 집을 어지럽히는지…" 이렇게 무의식 중에 얘기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 이러한 자기 암시가 아이들에게 참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상을 알면 알수록 우울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볼 때도 얼굴을 자세히 뚫어져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거울을 볼 때도 제 얼굴을 읽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관상을 알기 전 제가 제 얼굴을 보는 횟수는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상을 알게 되면서 제 얼굴에 대해서 자세히 뜯어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상 책을 읽기 전엔 제 얼굴에 대해 주인인 제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미릉골이 튀어나온 사람입니다. 미릉골은 눈썹 뼈를 의미하는데 이 뼈가 나오면 타이밍이 맞지 않고 일이 삐걱거린다고 합니다. 미릉골은 황소고집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성미가 강해서 황소도 피해간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고집 때문에 사람들과의 일이 삐걱거린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얼굴을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눈썹 뼈를 깎을 수도 없고….(상학에서는 뼈를 손대도 관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얼굴에서 밝은 면을 보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일엔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저처럼 미릉골이 튀어나온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 봤는데 뜻밖에 성공한 운동선수들과 사업가들이 많았습니다. 미릉골이 튀어나오면 승부욕이 강한 탓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인생에 일이 주어지면 그 일로 인해 항상 좋은 점만 생길 수 없고 항상 나쁜 점만 생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영화 '관상'이 공전의 히트를 쳤었지요? 저도 그 영화를 봤습니다. 세조 같은 경우는 배우 이정재 씨가 타고난 얼굴보다는 사나운 표정과 거침없는 행동'말투로 더 세조답게 만들었더군요. 사실 관상이라는 것도 타고난 기본 골격 구조를 얘기하는 것도 있고 사람이 살아오면서 얼굴에 쓴 역사를 얘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오느냐에 따라 관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지요. 상학에서도 부자가 되면 꼴이 바뀌고 또 높은 직책에 오르면 꼴이 고귀하게 바뀐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설은 맞는 말인 것입니다. 결국 인생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지, 관상의 운명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20년 뒤 제 얼굴에서 고귀한 관상이 보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오늘 글이 제가 '좋은생각 행복편지'에 부치는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독자와 글로 만나는 기쁨을 처음으로 선사해준 매일신문에 감사드리며 여러분도 운명에 도전하는 멋진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홍용택/성형외과 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차문 닫다 운전석 총기 격발 정황"... 해병대 사망 사고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