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여행자의 능력

요즘 라오스가 뜬다. tvN의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세 청년이 떠난 여행 덕분이다. 라오스라는 여행지도 매력적이지만 여기서 더 빛난 것은 배우 유연석이다. 숙소 예약부터 교통편까지 챙기는 책임감, 친구 발에 상처가 난 것을 눈치 채고 몰래 신발을 사다주는 세심함, 친구들이 굶을까 봐 아침밥을 준비하는 부지런함은 남편감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성격 덕분인지 그는 방송이 나간 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여행지는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일깨우는 신비한 곳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생 '길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한국어 설명도 없는 현지 지도만 보고 척척 길을 찾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 복잡한 대한민국 도로 체계를 비판했고, "잠자리에 예민하다"고 말해놓고 공항 의자, 덜컹대는 미니 버스, 12인실 게스트하우스 등 아무 데서나 금방 곯아떨어졌다. 가장 애매하다는 8시간 시차도 간단하게 극복하는 숨겨진 체력, 어떤 음식도 다 먹어치우는 식신 본능도 내 안에 있었다. 일상에 있었다면 쉽게 드러나지 않았을 능력이다.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위기를 만나며 성장한다. 혼자 떠난 첫 배낭여행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고장 나고, 환전한 돈을 집에 두고 공항으로 간 적도 있었으며, 환승하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다가 단기 여행은 무비자인 라오스에서 사기꾼에게 속아 비자 수수료로 돈을 날린 적도 있었다. 지면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위기를 여행지에서 맞닥뜨렸지만 이 위기를 넘어서고 무사히 여행을 끝낼 능력도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더 강해졌고, 1년간 직장 생활을 견딜 에너지를 얻었다.

여행을 하면 사람도 얻는다. 일주일 라오스 여행으로 유연석과 세 친구가 우정 팔찌를 나눠 찬 친구 사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3년 전 만난 멕시코 언니 K도 여행을 통해 얻은 인연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언니가 한국 여행을 할 때 내 집에 잠깐 머물렀고, 몇 달 전 친동생이 스페인에 갔을 땐 두 사람이 만났다. 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니는 처음 본 동생을 집에 불러 밥을 해먹이고, 주요 관광지에 데리고 다녔다. 나는 한의학에 빠진 언니에게 '동생 택배'를 이용해 실리콘 부항기를 보냈고, 언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급 '하몽'(스페인 전통 발효햄)을 선물해 나를 감동시켰다.

일상이 지겨워지면 구글지도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위성사진을 보며 여행하는 기분을 내면 스트레스가 잠시 물러가고, 내년 여행지를 상상하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다음 번 여행에서 영화 '비포선라이즈'처럼 에단 호크 같은 인연을 만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아니, 혹시 아는가. 내 안에 또 이런 인연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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