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케팅에 있어 최고의 화두는 단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야말로 강력한 마케팅 무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업 또는 지자체에서는 지금도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부가가치 창출에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21세기에 들어와서 생겨난 새로운 말은 아니다. 스토리텔링(단어, 이미지, 소리를 통해 사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를 사용하던 그 시대부터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할머니의 다리를 베고 누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는 세대에게 '할머니는 가장 훌륭한 스토리텔러'라는 광고 카피가 누구보다 와 닿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달로 인식되던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의 꼭 필요한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부터였다. 영화 , , 등의 세계적인 성공이 문화콘텐츠의 가치를 가시화했고, 이때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스토리텔링=돈'이라는 가치가 인식된 것 또한 이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지역 마케팅,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스토리텔링을 시작했고, 기업에서도 매출 증진을 위해 스토리텔링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입학과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에까지 스토리텔링이 접목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스토리텔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저 가까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사는 일에 그쳤던 소비가 지금은 '좋아하는 브랜드' 또는 '좋아하는 커피숍'을 찾아가 꼭 그 커피를 소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개인의 취향'이 생겨났고 '개인의 가치'가 존재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와 상징을 소비의 요소로 고민하고 있다. 제품에서 그 제품 기능 이상의 '의미'를 찾고 부여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품 자체가 아닌 제품의 감성가치, 즉 이야기를 구매하는 시대다.
문제는 이렇게 가치를 담아 전하는 스토리의 '과잉'이다. 개인이 모두 가치를 만들고 이를 나누는 시대이다 보니 10인(人) 10색(色)의 스토리 아니, 10인 100색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점점 기억의 지속력을 잃어가고 있다. 좋은 이야기는 그저 좋은 이야기로, 더 이상 절실하지도 오래가지도 않은 이야기, 즉 '그냥 이야기'인 셈이다. '이야기하기'인 '텔링'(telling)이 '경험하기'인 '두잉'(doing)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정보가 아닌 그 이상의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오래도록 '공감'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스토리두잉은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경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스토리텔링 전문가는 성공하는 스토리텔링의 비결로 '사실'과 '감동' 그리고 '대중성'을 꼽는다. 이 대중성이 바로 스토리두잉이다. 대구 중구의 골목 스토리텔링 중 '청라언덕'은 스토리두잉의 좋은 사례이다. 1925년 발표된 동무생각의 소재가 된 '청라언덕'은 1920년대 국민가곡이었던 동무생각을 부르던 이들에게는 3'1운동의 가슴 저린 장소이지만, 90계단을 오르며 첫사랑에 고백을 결심하던 고등학생 박태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계단을 올라본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언덕으로 남는다. 이렇듯 청라언덕에 대한 스토리두잉은 3'1운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에게도 청라언덕의 이중적 의미(사랑의 계단이자 항일운동의 역사)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 그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스토리텔링을 시작할 때 이미 스토리두잉의 방법과 범위를 고민해야 하고 이를 통해 경험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만을 파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이야기를 통한 경험을 팔아야 하는 시대다.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대중과 함께 실현(또는 경험)해 나갈 수 있을 때 '스토리=돈'이라는 인식이 이유 있는 가치가 되어줄 것이다.
박은경/한국애드·㈜스토리파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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