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
기진맥진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
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
피안(彼岸)을 노려보는 눈에는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遠視)의 배고픔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飛翔)만 보인다.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 지성사. 1993)
이 시의 핵심은 '황금빛 모서리'다. 내용의 전개는 단순하다. 의지-절망-의지의 순환 구조. 이 단순하고 지루한 구조에 힘을 주는 것이 '황금빛'과 '모서리'인 것이다. 그런데 석양과 의지의 대가로 새는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처럼 날갯짓을 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뿌린다. 그러므로 상투적인 '황금빛'을 빛나게 하는 것은 '모서리'라고 봐야 한다. 모서리는 하나의 평면이 또 하나의 평면과 만나는 사건의 지점이다.
하나의 사건과 또 하나의 사건이 만나는 것은, 철학자 알튀세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발적 혹은 우연적 필연. 우연과 필연이라는 이 서로 모순된 계기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모서리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모서리가 반드시 우리를 '저 먼 곳'까지 데려다 준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실패하고 기진맥진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현란한 비상'을 꿈꾸고, 그것이 '헛것'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피안을 노려보는 것은 그 우연성과 필연성이 한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삶이 우리 자신의 생 동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의지-절망-의지-절망…의 악무한이 아니라 의지1-절망2-의지3-절망4…의 비상을 우리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시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아프다. 그 황금빛 모서리가 칼날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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