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5>골목길에서 다시 태어나는 근대 건축 (하)

새 생명 불어넣은 옛 건물들, 과거와 미래 잇는 타임머신

디스트릭트 내부 모습.
디스트릭트 내부 모습.
경상북도 청년 CEO 오프라인 몰
경상북도 청년 CEO 오프라인 몰
대구근대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

건축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건축은 도시의 발전 과정을 담아낸다. 또 당대의 사건과 경험을 모아 보전하는 창고 기능을 한다. 시대별 다양한 건축이 모인 도시는 역사를 담는 커다란 그릇이다"고 했다. 건축역사가 콜린 로우는 "수많은 역사가 겹겹이 쌓인 도시는 다채롭고 풍성한 개성을 발산한다"고 했다. '콜라주 시티' 개념이다. 마치 미술의 콜라주 기법처럼, 중세 이전부터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의 건축이 뒤섞인 도시를 가리킨다.

대구에서는 삼한시대가 근원인 달성토성부터 시작해 시대별 다양한 건축에 대한 발굴 및 보존 작업이 꾸준히 이뤄졌고, 또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지난 20세기 근대 건축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동안 관 주도로 진행됐는데, 최근 민간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전통문화 전파하는 근대건물

대구 종로에 있는 디저트 카페 '무아'. 이곳은 종로의 오래된 요정 '가미'의 윤금식 대표가 수개월 전 옛 근대건물을 사들여 문을 연 곳이다. 직전에 화교가 운영하던 '경미반점'이, 그 이전에 역시 화교가 주인이던 '보안한의원'이 있었던 곳이다.

"점점 서구화되고 있는 카페 문화에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접목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또 준비해 문을 연 가게입니다." 앞서 윤 대표는 가미를 대구 요정 및 기생의 100년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으로 꾸민 바 있다. 윤 대표는 직접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사람들의 증언을 찾는 등 혼신을 기울였다.

무아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곳이다. 윤 대표는 가미를 대구근대골목투어의 명소로 만든 경험을 살려 무아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전통은 윤 대표가 알리려는 전통문화 그 자체이고, 현대는 전통문화를 젊은이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우선 1층이던 옛 건물을 3층으로 높이는 리노베이션 작업에 큰 공을 들였다. "국내 유명 건축가 5명과 만나 저의 구상을 밝힌 다음 각각 설계비를 지불하고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머릿속 구상에 가장 맞아떨어진 현원명 가천대 교수의 설계를 채택했습니다."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1층에 비해 2, 3층이 돌출돼 있는데, 우리 전통 누각을 표현한 것이다. 또 창과 벽면 등에 우리 전통 문양을 새겨 넣었다. 다음 할 일은 공간 속에 콘텐츠를 넣는 것. 현재 무아에서 팔고 있는 퓨전 요리들은 쌈밥, 궁중떡볶이, 절편 등 전통음식에 아이스크림과 호떡 등을 가미해 수개월간 연구'개발한 독창적인 메뉴들이다. 여기에 가야금 등 우리 소리를 매일 들려주는 연주 공간도 건물 안에 마련했다. 다음 달쯤에는 건물 옥상에 전통식 정원도 완성한다. 이곳에는 72년 된 고택을 해체해 다시 만든 정자가 설치될 예정이다. 윤 대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입니다. 사실 새로운 것의 모든 근원은 오래된 것이지요. 무아는 카페를 넘어 이런 의미를 젊은이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알리기 위한 공간입니다."

◆원도심 부활 꿈꾸는 근대건물

옛 근대건물 리노베이션을 통해 한때 번창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대구 원도심을 새롭게 꾸미고 있는 곳도 있다. 중구 동문동에 있는 '디스트릭트'다. 독특한 외관 및 내부 인테리어의 카페 겸 라운지로 먼저 유명해진 '게이트5'와 정갈한 한식 메뉴로 이름을 알린 식당 '밥앤'을 비롯해 주점과 파티장 등의 가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 건물은 1960년대에 지어졌다. 최근 3년여 간의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2013년 겨울에 디스트릭트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리노베이션 작업 기간이 길게 걸린 이유는 옛 건물의 골조와 벽면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신축 작업보다 오래 걸린 것은 물론 비용도 더 많이 들었단다. 특히 벽면이나 천장에 있는 옛 미장 양식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 볼 수 없는 양식이고 기술적으로도 지금보다 앞선 요소가 적지 않아 허투루 볼 수 없는 근대 건축의 흔적이란다.

디스트릭트의 매력은 기존에 있던 넓은 지하 공간을 살린 탁 트인 복층 구조다. 또 지상 및 옆 건물과 연결되는 철로 된 계단들도 눈길을 끈다. 신축 건물처럼 밀도를 빽빽하게 채운 것이 아니다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정원 및 테라스도 인상적이다. 디스트릭트 관계자는 "이 건물이 있는 거리는 옛적에 동성로만큼 번화했던 지역이다. 디스트릭트 말고도 곳곳에 옛 영화의 흔적을 지닌 건물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점점 슬럼화되고 있지만,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복원해 가게나 주택으로 꾸미는 역발상으로 이 거리가 다시 주목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새 생명 얻는 대구 근대 건축

이 밖에도 리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새 쓰임을 부여받고 있는 근대건물들이 대구의 골목길 곳곳에 있다.

대구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는 2011년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통해 삼덕상회, 이기붕 부통령 박마리아 옛집, 구 야마구치 도예점, 구 꽃자리 다방 등 북성로의 4곳 근대건물에 대한 리노베이션 설계를 했다. 이들 중 삼덕상회가 가장 먼저 작업을 거친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올해 구 꽃자리 다방이 리노베이션 작업에 들어간다. 민간에서 건축사 사무실을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꽃자리 다방은 국내 최초의 클래식 음악 감상실인 녹향(현재 대구문학관'향촌문화관 건물 지하에 위치)을 비롯해 백조, 백록, 호수, 청포도, 모나미 등의 다방과 함께 대구에서 수많은 예술인이 드나든 명소였다.

약령시에 있는 교남YMCA회관(등록문화재 제570호)에는 대구YMCA역사관 겸 3'1만세운동기념관 조성이 추진된다. 이곳은 1914년에 건립된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을 이끈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이었고,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을 이끈 거점이었다.

교남YMCA회관 맞은편에 있는 구 제일교회(대구시유형문화재 제30호)에는 기독교 기념관이 들어선다. 1898년 대구경북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설립됐으며 1937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대구시민회관 건너편에는 1958년에 지어진 3층짜리 상가 건물이 있다. 이곳은 '경상북도 청년 CEO 오프라인 몰'로 바뀐다. 지역 청년 창업자들이 만든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현재 내부 공사 중이고 곧 개장한다.

앞서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재탄생한 대구 근대건물로는 대구근대역사관(1932년 건립된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 대구시유형문화재 제49호)과 대구문학관'향촌문화관(1912년 건립된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이 유명하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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