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보야, 문제는 '공감' 이야!…『호모 엠파티쿠스: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 공감하는 인간/데브 팻나이크 지음/주철범 옮김/이상 펴냄

'공감은 인류 역사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공감의 힘이 판도를 바꾼 사례들을 모아 분석했다. 2010년 출간됐고 현재 절판된 책 '와이어드'의 개정판이다.

'공감'(共感)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남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가짐', '남의 의견이나 논설에 대해 자기도 똑같이 느낌'. 즉, 공감시킨다는 것은, 상대방을 나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이성적으로도 동의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이때 상대방은 적이 아니게 된다. 공감시킬 수만 있다면, 상대방은 든든한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될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 후보 빌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에 이어 지지도 2위에 머물고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당시 미국 경기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클린턴은 경제를 강조했다. '문제는 바로 경제야, 이 바보들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수많은 서민과 노동자가 클린턴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결국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국민들이 경제를 강조하는 슬로건에 주목하고 관련 공약을 높이 평가해 클린턴을 뽑은 것일까.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의 서민과 노동자들은 가난하다 못해 엉망진창이었던 환경에서 자란 클린턴에게 공감했다. 그런 클린턴이 잘살아보자고 호소하니 진정성 있게 느껴졌고 믿음이 갔다. 반면 석유 재벌 가문 출신 부시에게는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시가 살면서 한 번도 슈퍼마켓에 가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클린턴은 자신은 진짜 경제를 아는 후보로, 다른 후보들은 진짜 경제를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경력만 따지면 부시가 클린턴보다 훨씬 뛰어난 전문가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8년 뒤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났다. 클린턴의 민주당은 8년 전 물리쳤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아들 조지 워커 부시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또다시 공감이 판도를 갈랐다. 당시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었다. 특별한 이력이 없어 자칫 어수룩해 보일 수도 있는 부시는 만나면 공약 얘기만 늘어놓으며 잘난 체 할 것 같은 엘리트 정치인 고어보다 평범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공감하기 쉽다는 얘긴데, 과학적인 분석 결과도 있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언급되거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언급될 때 뇌에서는 주체성과 인식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이 특정한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언급될 때 뇌 속 신경세포들은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았다.

책은 고객의 공감을 이끌어내 수익으로 치환하기 위해 분투해 온 기업들의 사례도 소개한다.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 산업에 뛰어들기 전에 게이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거쳤다. 게이머들이 보다 사실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2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출시된 게임기 엑스박스는 흥행에 성공, 마이크로소프트 전체 수익의 10%를 차지하며 마이크로소프트가 IT 시장에서 우뚝 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은 일본 기업들이 싸고 가벼운 제품으로 시장을 차지해 나가자 도산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할리 데이비슨에게는 오랫동안 공감대를 형성해 온 오토바이족이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은 오토바이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 개발한 제품들이 호응을 얻어 위기를 극복했다. 고객의 공감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업 자산이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육상선수 출신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그런데 이 육상선수의 과거 경험을 제품에 활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 육상선수가 다른 사람들, 특히 미래 잠재 고객인 어린 육상선수들의 처지를 살피고 함께 뛰며 얻은 공감을 제품에 반영했다. 나이키는 멀리 봤다. 공감을 미래 기업 자산으로 삼았다. 292쪽, 1만5천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