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부러우면, 부러운 거다

이달 초 한 취업 포털이 공개한 국내 30대 공기업의 초봉 순위를 보고 씁쓸했다. 각 기업의 경영 공시를 분석한 그 자료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신입 사원에게 4천155만원을 지급해 7년 연속 가장 초봉이 높은 공기업에 올랐다. 이어 한국가스공사가 3천945만원, 한국마사회 3천904만원, 한국감정원 3천884만원, 주택도시보증공사 3천724만원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공기업의 초봉은 평균 3천288만원으로 전년보다 2% 올랐다. 초봉이 이 정도니 이들 공기업의 평균 보수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누가 말했던가. 누군가는 '돈이 다는 아니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설마 그분이 위의 직장에 다니는 분은 아니신지. 공기업은 역시 '꿈의 직장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구에 이전한 한 공기업 임원과 얼마 전 술자리를 한 기억이 난다. 그는 직책상 이 지역, 저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낀 대구의 여러 면에 대해 한참 얘기를 했다. 대구 부임이 몇 개월 되지 않은 터라, 놀란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일테면 근로자 임금이다. 그는 최근 회사에서 자신의 운전기사를 고용했는데, 임금이 2천800만원 정도였다고 했다. 이 돈으로 생활이 되느냐고 물으니,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이 줄을 설 것"이라고 만족해하더라는 것이다. 초봉 2천200만원에 대졸 여비서를 채용했다고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이 돈으로 사람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했다. 대구 근로자 임금 수준이 너무 낮은 것 같다, 이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진심으로' 묻는 듯했다. 자격지심일까. 자존심이 팍 상했다. 대구가 싸잡아 낮춰 보이는 것 같았다. 뭣보다 '대구에서 그 정도 초봉이면 그렇게 낮지는 않은데'라고 처음에 생각했던 필자 스스로 부끄러웠다.

사실, 대구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전국 꼴찌 수준이다.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지역별 상용근로자(5인 이상 사업장) 월 급여액 조사에서 대구는 16개 광역시'도 중 제주도 다음으로 낮다. 대구 상용근로자는 작년 경우 월평균 241만원을 받았다. 전국 평균은 292만원. 서울 326만원, 경북 277만원, 전남 285만원보다 한참 낮다.

이런 일차적 이유는 대구의 기업 환경 탓이다. 대구는 전체 사업체 수 19만8천 개 중에 직원 수 50인 미만의 소기업이 99%를 차지한다. 대기업에 수직 계열화된 협력사'하청업체들이 태반이다. 그나마 1차 제조업 밴드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2차 밴드나, 그 협력사 중에는 초봉 2천만원이 안 되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러니 대구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외지에서 직장 생활하면 월세라도 더 들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대구의 싼 임금에 위안이 안 된다.

고용을 투자로 바라보는 기업주의 마인드도 아쉽다. 단가 맞춰 내기도 급급한데, 종업원 월급을 올려 주라니 혀를 찰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일하기 좋은 기업들'은 기업주가 직원과 성과를 나누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내고 있었다. 요즘 같은 고용절벽 시기야말로 능력 있는 청년 인력을 선점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대구시도 '저임금 도시'로 굳어진 대구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구에도 초봉이 3천만~4천만원 넘는 기업들이 있다. 50인 미만의 소기업 중에도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하는 업체가 많다. 업종이나 직원 규모를 조금만 달리한다면,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통계만큼 대구의 임금 수준이 그렇게 무참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짐작만 할 뿐이다. 대구에도 괜찮은 기업들이 많고, 근로자와 상생하려는 CEO들이 많다는 것을 지역 청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청년들의 눈높이만 탓할 일이 아니다. 대학들도 뻔한 인크루트 투어가 아니라, 지역의 '괜찮은(Decent) 기업'의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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