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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국 어린이 사진전 60돌 기념 회고전](6회) 김익원 작 '형제'<1961년>

사내아이들의 특권…'누가 멀리 보내나'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7회 추천 김익원 작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7회 추천 김익원 작 '형제'(1961년)

우리네 사회는 사내아이를 선호하는 풍속이 유별나다. 자식들이 혼인할 나이가 되면 '언제쯤 손자를 안겨 줄 거냐'며 다그친다. 또 혼인을 하고 나면 새아기에게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낳으라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다가 아이를 가져 출산을 하게 되는데, 사내아이가 아니면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로 자위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서운하게 여긴다. '이왕이면 고추를 달고 나오지'하면서 죄 없는 어린 것을 향해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다.

빛깔 바랜 누런 사진이 있다. 여인네가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길거리에서 젖을 먹이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조선 여인들은 야만적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우리네 풍속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들을 낳은 여인은 보라는 듯 젖가슴을 내놓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물동이를 이고 다녔다. 그만큼 당당하였다.

조손동락이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는 늘 손자를 끼고 돌았다. 밥상머리에 앉혀 놓고 숟가락에 고기 반찬을 얹어주거나 사랑에서 잠자리도 함께하였다. 또 바깥나들이를 했다가 맛나는 게 있으면 손자 준다며 챙겨가지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자라서 나이가 차면 앞에 앉혀놓고 손수 글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글공부는 물론 생활예절도 배웠다. 인사하는 법이나 질서 지키기 같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그 가운데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방법이나 용변 보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 시절 변소에는 대변을 보는 곳과 소변을 보는 곳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소변보는 곳은 옆으로 길게 되어 있어서 다들 함께 사용하였다. 옆 자리 아이들의 고추를 힐끔거리면서.

사내아이들은 고추를 내놓고 방뇨하기를 좋아하였다. 골목에서, 들판에서, 전봇대에 기대서서, 때로는 남의 집 담벼락에다 함부로 내갈겼다. 철부지들은 누구의 오줌 줄기가 더 멀리 가는지 용을 써가면서 겨루기도 하였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히히거리거나 오줌이 떨어진 곳에 금을 그어가면서.

◇ 1961년 小史

▷5'16 군사정변=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박정희 소장과 육사 8기생 주도세력이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천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하는 군사장변이 발생했다.

▷ROTC(학생군사훈련단) 창설=전국 16개 대학 ROTC 1기생 모집이 1961년 6월 1일부터 시작됐다. 3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학생은 모두 2천642명이었다. 당시 문맹률이 높아 한글로 쓰인 야전교범조차 읽지 못하는 장교도 있어서 대학생 장교의 충원은 군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충주 비료공장 준공=1월 26일 충주비료공장이 착공 5년 8개월 만에 준공됐다. 정부 수립 이후 비료공장을 건설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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