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말리면 불량? 군납 고춧가루 이상한 기준

"농가 건조 고추 수매, 계약어겨" 남안동농협 등 5곳 137t 품질 하자, 9억여 과징금

방위사업청이 군납 고춧가루와 관련해 농가가 건조해야 하는 것을 농협이 홍고추 수매를 통해 건조'가공, 납품했다는 계약 위반을 이유로 품질 하자 판정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농협 홍고추 수매 모습. 엄재진 기자

방위사업청이 최근 일부 농협이 홍고추 상태로 수매해 건조'가공한 뒤 군납한 고춧가루를 품질 불량으로 판정, 수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농가에서 건조한 고추를 농협이 수매'가공해 납품한다'는 군납 계약 조건을 들며 홍고추 상태로 농협이 수매해 말린 뒤 가공한 고춧가루에 대해 품질 하자 판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2년 동안 2천870여t의 고춧가루가 군납용으로 사용됐는데, 이 가운데 137t을 품질 하자, 불량 고춧가루로 판정해 9억6천만원의 과징금을 군납 농협에 부과했다.

고춧가루 군납 계약 농협은 남안동농협과 전남 함평 나비골농협 등 전국 5곳으로 남안동농협 경우 전체 군납물량의 40%를 차지하는 연간 550t을 납품하면서 100여t을 홍고추 수매로 건조'가공해 2억여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농가에서 말린 건고추를 수매해야 할 농협이 홍고추 상태로 수매해 대신 말려줬다는 것이 방위사업청 측의 주장이다.

국방권익연구소 관계자는 "계약 조건에 농민이 수확해 말린 것을 농협이 수매해서 고춧가루로 만들어야 하는데, 홍고추를 농협이 수매해 세척하고 말려서 가공했기 때문에 계약조건 위반이고, 품질 하자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농민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더욱 깨끗한 청결 고춧가루를 가공해 납품하려던 것이었는데 이를 품질 하자로 봤다"며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남안동농협 가공사업본부 관계자는 "최근들어 농협들이 홍고추 가공처리시설을 설치, 고령의 농가들이 해야 할 건조작업 등 일손을 덜어주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세척'건조'절단'가공처리를 한 뒤 청결 고춧가루를 생산하기 위해 홍고추 수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추 생산농 권기중(68'안동 일직면) 씨는 "농가는 그야말로 소규모 건조시설밖에 없어 세척과정을 거칠 수 없다. 특히, 농업인들 절대다수가 고령화되면서 일손 부족 등으로 고추농사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농협이 현대화된 시설로 홍고추를 수매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품질의 고춧가루 생산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며 "더 좋은 고춧가루를 만들었는데 이를 품질불량 처리한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 했다.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도 "방위사업청의 판단에 명백한 잘못이 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조만간 최종 결정될 과징금 결과에 따라 해당 농협들의 고춧가루 납품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어 농협은 물론 고추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