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휴전 협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미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휴전 회담을 깨고 북진 통일을 고수하는 이승만 대통령이 걸림돌이었다. 미국의 손에는 이승만을 축출하고 군사정부를 세우는 안, 유엔사령부를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시키는 안, 휴전 협정 준수 조건하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안, 이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이즈음 미국에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이 대통령이 반공 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한 것이다. 미국이 바라던 휴전 협정 체결이 더 늦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대통령의 협상력은 극대화되었다. 당황한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를 특사로 급파, 14차례나 회담을 하며 한국 정부와의 이견을 좁혀나갔다. 최종안 조율에는 국무장관까지 쫓아왔다. 이렇게 해서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워싱턴에서 조인됐다. 미국은 달랑 '휴전 불방해' 친서 한 장 얻었다. 한국은 200만달러 상당의 경제 원조와 20개 사단 병력 증강 계획을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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