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미 해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은신처에 투입됐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요원들 헬멧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작전 종료 후 미 당국은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전문가인 공군 장성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작업하며 상황을 브리핑하는 사진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헤드테이블 옆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모니터를 지켜봤다. 테이블 양쪽에 바이든 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 게이츠 국방장관이 자리를 지켰다. 이 작전은 9'11 테러를 9년 만에 일단락짓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옆에서 지켜본 것이다. 대통령 신분보다 공적 프로세스를 더 중시하는 미국의 합리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도 정책 결정 등 공적 프로세스가 소수의 독단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고치자는 취지다. 노무현정부 당시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과마저 이명박'박근혜정부 들어 깡그리 무시됐다. 대신 '왕차관' '십상시' '비선 실세'라는 전근대적인 용어가 대신 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정부 때 벌어진 각종 스캔들과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시스템의 선진화에 무관심한 지도자들이 잉태시킨 산물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 최고기관인 청와대의 참모진이 누구랄 것도 없이 불법을 방조하고 충실한 조력자가 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모든 국민이 분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3년 김영삼정부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해 '직지심체요절' 반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 2명이 '직지' 반출을 한사코 거부해 무산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개 사서보다 못한 당'정'청의 조력자들이 공적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법 테두리를 무시로 뛰어넘은 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다.
더 한심한 것은 아무 권한도 없는 최순실의 손끝 하나에 대통령과 공인들이 움직이고도 국가의 녹을 먹었다는 것은 멀쩡한 국가라면 상상도 못할 국기 문란이자 국정 파탄이다. 저잣거리 아줌마의 '탐욕'과 '수다'에 국가 운명을 내맡긴 꼴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국민이 "박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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