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통령의 항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민주 정치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쿠데타다."

지난 8월 31일 탄핵으로 쫓겨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의 말이다. 탄핵 이유는 재선을 앞둔 2014년에 국영은행의 자금으로 정부의 재정 적자를 감추려 했다는 혐의였다. 그녀는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저항했지만, 대세를 거스리지 못했다. 탄핵 자체가 '의회 쿠데타' 성격이 짙었지만, 그녀는 경제난, 부패 의혹 등으로 이미 국민의 지지를 잃은 상태였으니 그리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권좌에서 쫓겨난 자는 늘 분해하고 황당해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라며 결백을 하소연하고 국민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1913~ 1994)은 백악관을 나와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닉슨은 인터뷰, TV쇼 등에서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모두 사소한 문제였다. 경제 문제나 외교 활동 등 큰 것들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해 대중의 분노를 샀다. 뻔뻔하고 야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사석에서는 자주 자제력을 잃고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를 붙잡고 울면서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라고 했다.

닉슨은 자신이 쫓겨난 이유가 '촌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복한 집안 출신에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나온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변방인 캘리포니아 태생에 휘티어 대학을 나온 '흙수저' 출신이어서 '마녀사냥'에 걸려들었다고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주류 정치인과 언론의 '닉슨 죽이기' 음모에 빠졌다고 여겼다. 전임자인 케네디'존슨 대통령도 도청,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갖고 있었는데, 유독 자신만 문제가 돼 쫓겨났다는 것이다.

닉슨의 항변은 인간적으로는 수긍할 수 있지만, 정치인 공직자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주변관리를 못한 것 빼고는 잘못이 없다' '1원도 챙긴 적이 없다' 따위는 쓸데없는 변명일 뿐이다. 국민 바람에 순응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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