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수면·고민 등 생활 습관 통해
환자 신체적 결함'정신적 갈등 분석
운동생리 분야 전문적 지식 갖춰
美노화방지학회 정회원 자격증도
26년째 복지시설'무료급식소 후원
정신지체 장애인에 무료 진료도
김재왕(60) 안동 김재왕내과의원 원장은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사양했다. 경상북도의사회장을 맡고 있는 본인이 부각돼서는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끈질긴 설득 끝에 6개월 만에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그의 진료실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X-선, CT 등 영상촬영 검사 사진을 볼 수 있는 모니터 한 대가 전부였다. 대신 책상 위에는 요즘은 보기 힘든 종이 차트가 가득 쌓여 있었다. 차트에는 환자의 진단명과 처방내역, 내시경 사진 등이 차례로 묶여 있다. 간호사 안내데스크 뒷벽을 차지한 책장은 환자 이름에 따라 분류된 종이 차트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자의무기록(EMR)보다 차트가 환자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보기 좋더라고요. 환자들도 종이에 적고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면 이해하기 훨씬 편하대요." 그는 "화가인 아내도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메모지를 모두 모아 전시회를 해보자고 했다"고 웃었다.
◆대학병원 교수 자리 마다한 시골의사
그는 바쁘다. 일주일에 사흘은 의사회 회의가 있고 격주로 전국 시'도회장회의와 대한의사협회의 정책협의체인 'KMA 폴리시'(KMA Policy) 심의위원으로 참석한다. 바쁜 일정에도 매일 200~300명의 환자를 만난다.
정신없는 일상이 그가 원하던 삶은 아니었다. "제 성격과는 다른 생활이에요. 전 그냥 조용히 앉아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걸 참 좋아해요. 저녁노을을 보면서 구름이 움직이고 하늘의 색깔이 오묘하게 변화하는 걸 보고 있는 게 참 즐거워요. 요즘엔 그런 즐거움을 못 느끼고 있죠."
그의 삶도 원했던 방향과는 조금씩 다르게 흘러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여름방학. 그는 행정고시 준비를 하던 하숙집 주인 아들과 함께 황악산 직지사 암자인 삼성암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참 좋더라고요. 조용하고 아무도 없고 3, 4일은 공부가 정말 잘되는 거라.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도저히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불현듯 짐을 싸 산 아래로 미친 듯이 뛰어내려왔어요."
하지만 산 아래에서 감기약과 미숫가루가 든 아버지의 소포를 받아든 그는 터덜터덜 다시 암자로 돌아왔다.
"돌아온 게 평생의 보약이 됐어요. 한 달 동안 침묵 속에 시간을 보내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어요. 참된 삶은 무엇인지,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그 질문들은 고교 시절 내내 계속됐죠."
사람과 사물의 본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법과대에 진학하길 원했다. 하지만 고3 예비고사를 친 뒤에 의과대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신체의 고통은 성격과 생각을 바꾸고, 잘못된 생각이 신체를 병들게 한다는데 생각을 하면서 의사가 돼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졌어요."
그는 대학병원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오랫동안 꿈꾸던 시골의사가 됐다.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고민 끝에 시골에서 개원하겠다고 사양했죠. 후회는 없어요."
◆의학적 지식 갖추고 환자 편견 없이 대해야
김 원장은 "환자를 대할 때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증상만 치료하는 건 미봉책에 불과해요. 직업은 뭔지, 특별한 마음의 고민이 있는지, 아침 몇 시에 일어나는지 등 단편적인 질문을 통해 생활 습관과 정신적인 갈등, 신체적 결함, 환경 요인들을 찾아내는 거죠."
그는 "'의(醫)' 자에는 '술 주(酒)' 자와 '무당 무(巫)' 자가 모두 들어 있다"고 했다.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달래는 주술적 요소와 의학적 지식인 약의 요소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학적 지식입니다. 의학적 지식이 박약한 상태에서 마음만 다독인다는 건 돌팔이이고 선무당이고 사기꾼입니다."
선무당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운동생리 분야는 전문적 지식을 갖췄다. 그는 현재 대한체육학회와 대한선수트레이너학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인 환자가 많은 농촌 지역 특성을 감안해 미국 노화방지학회 정회원 전문의 자격증도 받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노화 관련 학회인 미국 노화방지학회는 정회원 가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지역사회 활동도 적극적이다. 그는 안동시의사회장을 비롯해 대구지검 안동지청 방범위원, 의료자문위원, 대한의사협회 중앙이사'중앙대의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경북도소방본부 자문위원, 경북도 부패방지협의회 위원, 지역보건의료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사회 환원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26년째 사회복지시설과 무료급식소, 야간학교 등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무료 진료와 후원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액 기부자 모임인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해외의료봉사도 4차례 참가해 캄보디아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65세까지만 의사를 하고 그만둘까 생각 중이에요. 걸어다닐 수 있고 기억력과 감성이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싶어요. 조용히 머릿속의 모든 잡념을 떨쳐내고 남은 것들을 글로 풀고 싶어요. 음악도 듣고 친구들과 마음속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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