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복수 수능은 어떤가

이동관 편집부국장
이동관 편집부국장

지진으로 1주일 미뤄 치러진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큰 탈 없이 지나갔다. 천재지변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1주일 연기 조치에 수험생도 학부모도 지진으로 놀란 국민들도 모두 술렁거렸고, 일부에서는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참 잘한 결정이었다. 연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도 안 된다.

올해는 이렇게 넘어간다고 치자. 그럼 내년에는? 후년에는? 비단 지진만이 아니다. 천재지변은 이번 지진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 천재지변뿐인가. 각종 인재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수능시험을 연기시킬 만한 요인은 도사리고 있다. 선례가 생겼으니 두 번 다시 연기란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은 대한민국 대학 입시의 근간이다. 논술, 학생부종합전형 등 다양한 보완재와 대체재들이 그럴 듯한 포장으로 나오지만 그것들은 모두 수능시험의 '파생상품'일 뿐이다. 본질은 역시 수능이다. 수능이 잘못되면 다른 걸로 만회가 잘 안 된다.

이날 시험을 망치면 1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도 1년, 감기가 들어도 1년, 배탈이 나도 1년이다. 신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이다. 그러니 알아서 잘~하라고? 수험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세상사 다 그런 거라고? 10대 후반 청소년에게 그건 너무 심하다.

수능의 충격을 완화시키기거나 분산시키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어설픈 입시정책의 변화나 수술이라면 곤란하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교육업자들만 배불리는 일의 반복이라면 더더욱 안 된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이고 21세기적인 인재를 기른다는 턱도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나온 '듣보잡' 입시제도가 번번이 금수저나 소수를 위한 전형으로 변질되었음을 보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된 원인은 단 하나다. 시험을 단 하루, 한 번만 치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꼬박 8시간을 한자리에 앉아서 200개 안팎의 문제를 푼다. 그걸로 초중고 12년의 학습 성과 전체를 재단하니까 그렇다. 곳곳에서 무리수가 발생하는 거다. 수능의 이전 버전인 예비고사와 학력고사까지 포함하면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다.

사실 고3 2학기가 되면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는 시험 응시 능력 배양 기간이다. 학과목 진도는 여름방학 때쯤이면 대부분 끝이 난다. 또 진도 맞추기는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수능 날짜를 앞당겨도 된다는 말이다. 입시 사정을 위한 수능 데드라인이 11월이라면 그때까지 여러 번 치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다. 많으면 더 좋다. 전국 단위 모의고사 치르듯이 치르면 된다. 지금도 6월 모의고사와 9월 모의고사는 수능처럼 실력을 전국 단위에서 점검한다. 그렇게 수능을 여러 번 치르자는 거다. 여러 번 중에 제일 좋은 성적을 자기 성적으로 하면 된다. 평균도 좋다. 매년 11월이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부담과 중압감을 분산시키거나 덜어주자는 거다.

시험 한 번 잘못 친다고 아이들 인생이 종 치는 거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제도가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시켰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잘 치면 된다는 걸 가르치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인생이 '한 방'이 아니고 오래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도 수능은 한 번보다는 여러 번 치르는 게 맞다.

교육 당국은 시험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복수 수능에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불가 의견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 당국인가?

포항 지진과 수능 1주일 연기 사태가 수능 복수 실시라는 대입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