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동해선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아내가 동해선 기차를 타고 소풍 가자고 하였다. 승용차로 잠깐 다녀올 길을 구태여 기차를 타자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월 말 포항에서 영덕까지 철길이 개통되었다. 중간에 월포역, 장사역, 강구역 단 세 개의 역이 있다고 하였다.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월포, 장사, 강구 하면 더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이 아닌가. 운전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길을 느긋하게 앉아서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김새기 전에 얼른 다음 날 표를 예약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소풍을 나섰다. 새로 만든 포항역이 깔끔한 차림으로 우리를 맞았다. 역을 지을 때 고래 형상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새것을 보니 옛것이 생각났다. 옛 포항역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역은 1904년에 간이 역사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차가 운행된 것은 1908년이었다. 경동선이라는 이름의 협궤열차가 대구와 포항을 오고 갔다. 영일만의 해산물과 흥해, 연일, 안강 일대에서 생산된 곡물 운송을 담당했다. 침략자들에 의한 수탈의 길이었다. 일제가 계획했던 동해선도 다름 아니었다.

대구 방향이 아닌 영덕 방향으로 기차가 출발하였다. 예쁜 그림을 곁들인 기차는 일제 침탈의 수모를 떨치고 동해안 지역 주민들의 삶을 싣고 달렸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월포역이었다. 역시 바다가 환하게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오른쪽 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다음 역은 장사역이었다. 바다는 물론이지만 멀리 바닷가에 있는 유럽풍의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본 승객들은 자치단체에서 조성 지원을 했다느니, 주민들의 협조를 구했다느니, 예쁜 마을이 조성된 연유를 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강구역이었다. 강구 하면 떠오르는 바다와 대게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혀를 찼다.

영덕역에 내려서 북으로 놓인 철길을 바라보았다. 곧 울진과 삼척까지 이어질 계획이라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동해선 철도는 이번에 새로 생긴 게 아니다. 6·25전쟁 전까지 양양에서 원산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포항에서 강릉까지는 부지뿐만 아니라 노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상태였다. 이번 개통은 70년 넘게 기다려온 철로이며, 대기하고 있던 기차가 달리게 된 셈이다.

지난 2002년 납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합의에 따라 동해선을 복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미뤄지고 있다. 동해선의 가치는 경의선과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경의선은 중국 철도와 연결되지만 동해선은 나진,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연결되어 유럽으로 이어진다.

탑승시간 25분, 너무 아쉬웠다. 문득 내처 동해선 기차로 휴전선을 넘고, 시베리아를 지나서 유럽으로 달리고 싶었다. 객차 벽면 '영덕행' 글자가 '유럽행'으로 바뀌었으면 참 좋겠다. 마법처럼 수리수리 마하수리….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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