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6년, 인턴 및 레지던트 5년을 지나면 비로소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르게 된다. 합격률이 90% 수준이어서 평이한 시험이다. 그러나 읽어야 할 책의 분량은 제법 부담스럽다. 이 준비를 위해 전공의 수련기간 끝 무렵 두 달에서 넉 달 정도를 시험공부에만 할애하는 관행이 있었고, 공부하는 곳을 대구경북 의사들은 ‘뒷방’이라고 불렀다.
전공의는 거주자라는 뜻을 가진 레지던트라 불리며, 그 뜻에 걸맞게 병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전문의를 도우면서 의료기술과 학문을 배우는 신분이다. 하루에 20시간을 일하기도 하였고, 100일씩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휴가는 1년에 7일 정도였고, 출산 휴가도 따로 정해진 것이 없었다. 뒷방은 수련기간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뒷방 들어가기 전까지 날짜, 시간, 분, 초까지 카운트 하는 전공의도 있었다.
뒷방에 들어갈 때면 그 과정을 먼저 지나간 선배 전문의들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식사자리를 만들고, 격려금을 모아 주기도 하였다. 전문의 시험을 치르는 나이는 대게 30대 초, 중반이다. 중ㆍ고 시절의 학습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학창 시절에조차 공식이나 표를 암기하고 며칠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30대는 기억의 지속이 더 짧다. 격무, 수면부족, 운동부족으로 늘어난 체중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미명 아래 마셨던 술 등으로 망가진 몸을 공부하면서 회복하는 곳이 뒷방이다.
뒷방에서는 전공의 시절 주워들은 이야기, 임상경험, 틈틈이 읽은 책과 논문들을 자기만의 학문 체계로 완성시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공의에게 뒷방은 뒷방 늙은이에서 느끼는 버려진 곳 혹은 관심에서 사라진 곳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막을 지나는 긴 여정의 종착점 인근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올해부터 뒷방이 사라지게 되었다. 복지부가 의사협회와 각 학회에 ‘전공의 수련기간 운영방침’ 공문을 통해 전문의 자격시험 준비에 따른 수련공백이 전공의 수료 취소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특별법 시행에 따른 반대급부이다. 전공의 특별법은 1주일에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으며, 연속하여 36시간 이상 근무 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 장시간 병원에 근무하지 않으니, 이에 대한 보상인 뒷방 제도가 유지될 이유가 없으며, 전문의 시험준비도 틈틈이 하고, 휴가를 내서 하라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데 2주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재 4년차들은 전공의특별법 제정 전에 초과근무를 해온 것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뒷방 문화 폐지 자체는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좋은 것을 하나 얻으면 또 하나는 잃기 마련이다. 뒷방은 없어졌지만 더 멋진 전공의 문화가 생길 것으로 낙관한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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