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으려면…

"대구 수출 지표는 앞으로 나빠질 겁니다. 자동차 부품, 섬유 등 기존 주력 산업이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대구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80억달러를 돌파했다는 통계가 나온 올해 초,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 관계자가 한 말이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세계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대구 수출이 1년 새 12.3%나 뛰어오르며 큰 성장세를 보인 데다 수출 상승을 주도한 것도 주력 품목인 자동차 부품과 산업기계였기 때문이다. 왜 수출이 늘었고, 어떤 업종이 선전했다는 긍정적 얘기만 나올 줄 알았던 자리에서 갑작스레 '대구 수출 위기론'을 언급한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지난 1분기 수출 성적표를 받아 들 때까지도 대구 수출 호조는 이어졌다. 1분기 대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0.8% 감소한 19억3천만달러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전국 수출액이 8.5%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달은 달랐다. 수출 지표가 크게 악화됐다. 지난 17일 대구세관에 따르면 4월 대구 수출액은 6억3천만달러로 지난해 4월보다 10.1%나 줄었다. 자동차 부품 업체가 상당수 포함된 금속제품 업종 수출이 30% 줄었고 전기전자제품과 기계·정밀기기 업종 수출도 각각 29%, 14% 감소했다.

이는 대(對)중국 수출이 크게 준 탓이다. 대구 전체 수출에서 23%를 차지하는 중국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8.8% 줄면서 전체 수출 부진을 이끌었다.

지역 기업들이 국내 완성차 업체로부터 지난해 초 수주한 물량이 최근 납품을 마치고 새 계약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가 내수·수출 전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으며 협력업체에 발주하는 물량이 다소 줄었기 때문이다.

대구 경제 전반이 일부 국가와 대기업에 휘둘리는 모양새다. 의존도가 높은 국가나 대기업이 설비 투자를 늘리거나 증산 계획을 밝히면 혜택을 누리는 반면 반대 상황일 경우 훨씬 큰 어려움을 겪는 구조다. 대구 중소기업 상당수가 일종의 '낙수효과'를 바라보고 있는 협력업체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재는 작게, 악재는 크게 작용할 가능성도 적잖다. 결국 수출 판로를 다변화하고 대기업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해답은 지역 기업들의 업종 고도화와 기술력 확보이다. 다른 곳에서 못 만드는 물건을 만들어야 대기업과의 계약에서 '을'의 위치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특별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에 이번 수출 지표는 남의 얘기다. 전기차에 쓰이는 부품을 생산하는 한 지역 업체는 오히려 올해 공장 규모를 키워 생산량을 늘리기로 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러 특허로 무장한 의료기기 업체나 식품 업체들은 대구에서는 불모지에 가까운 남미, 중동 등에까지 수출한다. 대기업을 통하지 않으니 납품 과정에서 '양보'할 일도 없다.

4월 대구 수출이 줄어든 것은 지역 업체들의 역량이 갑자기 나빠졌다거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꺾인 점과 미중 무역분쟁, 대기업 부진의 영향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기술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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