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통의 블로킹

이지영 배우·연출가

이지영 배우·연출가
이지영 배우·연출가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배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

작품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그것을 블로킹(Blocking)이라고 한다. 스포츠 용어로 잘 알고 있는 블로킹이 연극에서는 무대 위 '동선'을 의미하는 말이다.

독일출신의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블로킹에 대해 "무대와 객석이 두꺼운 유리벽으로 막혀 있어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관객은 등장인물의 움직임만을 보고서 스토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블로킹이다" 라고 정의한 바 있다.

블로킹은 연출자와 배우가 함께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장면을 만들며 의견대립으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그 움직임에 연출자는 아이디어를 더하고,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우들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블로킹을 완성시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교감하며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관객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하는 연출자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 사이에는 상호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10년 전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연출자가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연기 왜 그렇게 편하게 하려고 하냐. 그게 그렇게 힘들어? 하라면 좀 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그저 낯설었고 그 움직임이 너무 어색했다. 배우가 불편하면 관객들도 불편할 것 이라는 생각에 연출자에 대한 부정과 야속한 마음이 컸다.

연출자가 되어보니 블로킹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배우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소통하고 배려하며 장면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심한 연출자와 총명한 배우의 소통이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만들어 낸다 할 수 있다.

연극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만나 작품을 완성 시키는 공동체작업이기도 하며, '협력'으로 만들어내는 '소통과 공감'의 예술이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가족과 친구 나아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 할 것이다.

누군가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연극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2020년 경자년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소통의 블로킹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지영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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