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성년식, 새해의 차례 등 '의식'(儀式, ritual)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자, 수천 년에 걸친 인류 문화와 전통의 핵심이다. 종교든 기업이든 교육이든 운동이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의식은 존재한다. 의식의 실행 속에서 일상의 몸짓은 아름다운 상징이 되고, 의식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
우리는 운동 경기에 열광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자기들만의 의식을 치르며 경기에 임한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경기 내내 양말을 갈아 신지 않는다. 심지어 몇 주 동안 이어지는 토너먼트 기간에도 양말을 세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말을 바꾸거나 세탁하면 경기에 패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빨간색을 승리의 색깔로 여긴다. 주말마다 그는 빨간색 옷을 입고 외출할 정도다.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장에 발을 내디딜 때 오른발이 먼저 잔디에 닿도록 한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선수들은 더 긴장한다. 매 경기마다 긴장의 강도는 높아지고 불확실성은 커진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도 기술만으로 경기를 이길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기 나름의 의식을 수행한다. 스포츠 저널(Journal of Sport Behavior, Vol. 34, No. 1)에 따르면 의식이 운동선수들의 높은 긴장을 완화시켜 경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의식은 시간의 흐름과 뗄 수 없다. 기독교의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등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의식이다. 우리 고유 명절인 설, 추석, 단오와 한식도 시간에 따른 의식이다. 그래서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週期傳承) 의식이라고 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새해맞이 의식이 진행됐다.
유대인들의 새해 의식은 나팔절이라 부르는 '로슈 하샤나'(Rosh Hashanah, רֹאשׁ הַשָּׁנָה)다. 로슈 하샤나는 '그 해의 머리'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유대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을에 새해를 맞이한다. 그들의 새해 의식은 10일 동안 지속된다. 행사는 전날 오후부터 시작되지만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첫날의 예배, 식사, 나팔 소리는 물론 한 동작 한 동작이 모두 의식이다. 새해 저녁에 먹는 빵도 독특하다. 이날 유대인들은 빵을 소금에 찍어 먹는 대신 꿀에 찍어 먹는다. 희망찬 새해를 향한 그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그들이 사과를 꿀에 찍어 먹는 독특한 장면도 볼 수 있다.
로슈 하샤나의 첫날 오후에는 몸을 물속에 담그거나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자신의 소지품을 던진다. 이 의식을 그들은 '타쉬리히'(Tashlich)라 부른다. 지난해 지은 모든 죄와 잘못들을 내어 던지며,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열흘간의 새해 의식은 대속죄일로 막을 내리는데, 10일의 새해 의식 가운데 9일이 속죄와 성찰의 기간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잘못한 모든 것들을 샅샅이 살펴 회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대인의 새해 의식은 즐거운 축제의 시간, 가슴 벅찬 내일을 기대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을 보며 깊이 침잠하는 시간이다.
경자년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항아리에 담긴 물을 비워내듯 우리 속에 켜켜이 쌓인 묵은 찌꺼기들을 비워내자. 그것이 경도된 생각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새해는 더 큰 희망과 기쁨의 시간을 위해 잠시 움츠리는 시간을 가지자. 역경의 계사 편에 나오는 '척확굴이구신'(尺蠖屈以求信)이란 구절을 숙고해 보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더 크게 펴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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