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만들어진 성장/ 데이비드 필링 지음/ 조진서 옮김/ 이콘 펴냄

GDP 높아지면 우리는 행복해 질까? 성장신화·GDP에 대한 맹신 깨부수다

데이비드 필링 저
데이비드 필링 저 '만들어진 성장'

지난 70여년, 세계 경제를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라는 지표가 주도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이것이 오르면 오를수록 좋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GDP가 성장한 정도에 비례해 실제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정한 전문적 수치가 현실과 괴리돼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 지출 배제" 쿠즈네츠 vs "정부 경제가 필수" 케인스

경제 관점에서만 보면 세계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좋은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구매력 또한 사상 최대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소득의 불평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가려지고 있다. GDP가 성장할수록 부자들만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당신의 생활 수준에는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장이라는 것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

GDP는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에 대응하고자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만든 척도다. 쿠즈네츠의 경제 측정 방식은 당시 정보가 부족했던 국가의 경제라는 영역을 가늠케 하는 시도였다. 그의 보고서는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가 반토막났다는 걸 알려줬다. 이후 공공사업에 큰 비용을 투자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 뉴딜 정책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는 경제 상황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하지만 쿠즈네츠의 GDP는 곧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쿠즈네츠는 정부 지출과 사회적 후생에 저해되는 경제적 수치를 GDP 계산에서 제외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동시대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가 경제에서 필수적 역할을 한다는, 쿠즈네츠와 반대되는 새로운 경제관을 내놨다. 케인스의 영향력과 제2차 세계대전, 현실적 필요성 등과 맞물려 쿠즈네츠의 방식보다는 케인스의 방식이 인정받아 그를 중심으로 한 GDP가 서구로부터 전 세계에 뿌리내렸다.

◆'경제성장'으로 보였던 아이슬란드, 아무런 경고도 못 받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세계는 경제성장 만능주의에 빠져 경제를 부풀리는 데 혈안을 올렸다.

아이슬란드 역시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은행 시스템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며 유럽 전역의 자산을 인수했고 일반 시민들도 곧 같은 방법으로 주식시장 돈을 쏟아부었다. 아이슬란드 경제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성장해 이내 세계에서 6번째로 부유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위기가 닥쳤다. 아이슬란드는 한 달만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소위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은 당시 아무런 경고도 주지 못했다. 그저 GDP만 봤을 때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경제의 덩치는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한계를 보여준 방식이 여전히 국가 경제 지표로 쓰인다는 점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GDP의 허점을 노려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측정한 경제 통계는 놀랍도록 부정확한 상황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경제 부풀리기를 거듭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GDP 지표만으로는 이 같은 위기를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경제 부풀리기를 거듭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GDP 지표만으로는 이 같은 위기를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자연자산, 행복 등 가치 반영해 GDP 수정해야

GDP는 국가 차원 문제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개인의 경제 활동에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생산성 경계'가 변화하면서 지금껏 GDP가 집계해 온 활동만으로는 새로운 경제활동을 집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엔 항공사 직원이 보딩패스를 출력했으나 지금은 개인이 혼자서도 뽑을 수 있게 됐다. GDP는 이를 오히려 직원 일이 사라져 경제활동이 축소된 것이라 측정한다.

인터넷 상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위키피디아에서 지식을 찾거나 페이스타임, 카카오톡 영상통화 등을 이용하고 메신저로 대화하는 활동 또한 GDP는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책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도 GDP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자연자본과 행복에 대해 그렇다. 저자는 벤담의 행복론과 국가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라는 지수를 중심으로 행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성장이라는 고정된 가치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야에서 미래를 살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360쪽, 1만8천원.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경제 부풀리기를 거듭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GDP 지표만으로는 이 같은 위기를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경제 부풀리기를 거듭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GDP 지표만으로는 이 같은 위기를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 데이비드 필링은

파이낸셜타임즈에서 약 30년 근무한 기자이자 에디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여러 대륙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비즈니스, 투자, 정치, 경제 칼럼을 썼다. 전세계 지도자와 경영자, 경제학자 등과 수십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파이낸셜타임즈 주요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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