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재윤이법(환자안전법 개정안) 국회 통과 기다리며

2018년 발의돼 그동안 번번이 통과되지 못한 환자안전법 개정 이번에는 꼭

이주형 사회부 기자.
이주형 사회부 기자.

재윤이는 2017년 11월 고열 증세로 평소 다니던 대학병원을 찾았다. 생사의 촉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혈병 재발을 의심한 의료진은 수면진정제와 진통제를 과다하게 투여했다. 무리한 골수검사에 호흡곤란 등 부작용이 잇따랐지만 응급처치 기구가 하나도 없는 일반 주사실이었다. 의료진의 환자 상태 확인마저 늦었다.

재윤이는 그 후 24시간이 안 돼 사망하게 된다. 3년간 백혈병 치료를 씩씩하게 견디던 아이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재윤이 어머니 허희정(42) 씨는 병원 측에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했는지 물었고 병원은 "보고할 계획이 없으니 원하면 직접 하라"고 답했다.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재윤이 사망 후 1년이 지나서야 가족이 직접 신고한 내용을 분석해 '진정약물 투여 후 환자 감시 미흡 관련 주의경보'를 내렸다.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를 골자로 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이 '재윤이법'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개정안은 2018년 발의돼 그동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더디게나마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를 남겨뒀지만, 지난해 11월 여야 정쟁으로 본회의가 계속해서 취소돼 아직 계류 중이다. 재윤이 죽음의 진상 규명 도돌이표에 갇혀 수사만 번복되고 있다.

2018년부터 2019년 또 2020년. 두 해가 지나도록 재윤이 가족과 함께 취재에 매달리고 있다. 병원 압수수색, 세 차례에 걸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의뢰 결과가 나오는 동안 재윤이의 의료사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왔다.

당시 의료진이 재윤이에게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과다 사용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약물 투여와 급격한 호흡곤란에는 연관성이 있었다. 시술자와는 별도로 책임 의료진이 감시·감독 의무도 수행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중재원의 더욱 자세한 답변도 나왔다. 사건은 돌고 돌아 검찰에서 다시 경찰로 내려와 현재 3개월째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여섯 살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이 어린 희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세 번의 겨울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재윤이의 부모를 처음 본 2018년 어느 여름날이 아직 생생하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너무나 서럽게 우는 이들을 보며 가슴속이 찜통이 된 것처럼 답답했다.

옛말에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이들은 아직 재윤이를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아직 재윤이와 살고 있다. 엄마 허 씨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누워 있던 재윤이의 살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고 한다. 허 씨는 2년이 넘게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아빠는 어린이날마다 아들이 좋아하던 새 자동차 장난감을 재윤이 방에 슬며시 가져다 놓는다. 미세먼지를 처음 본 재윤이의 동생은 "하늘에 미세먼지가 많아서 하늘나라에 있는 오빠가 힘들겠다"며 걱정한다.

여야는 지루한 싸움을 중단하고 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을 심의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의료사고는 쉬쉬하고 비밀리에 합의하는 것이 아니다. 알리고 드러내 재윤이 같은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 환자안전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재윤이 엄마의 외침이 이번에는 허공에 뿌려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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