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진시황 묘를 지나며(途經秦始皇墓) - 허혼

'무소불위' 권력, 평가의 몫은 백성에게 있음을 시사하는 한시

기세등등 산 같은 무덤 나무만 수북하니 / 龍盤虎踞樹層層(용반호거수층층)

권세가 구름을 찔러도 아 결국은 죽는구나 / 勢入浮雲亦是崩(세입부운역시붕)

푸른 산 가을 풀에 묻힌 것은 같지마는 / 一種靑山秋草裏(일종청산추초리)

길손들은 한 문제의 무덤에만 절을 하네 / 路人唯拜漢文陵(로인유배한문릉)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전국칠웅(戰國七雄)! 전국시대에 중국의 패권을 놓고 맞장을 떴던 7개의 강대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나머지 여섯 나라를 순식간에 각개격파하고, 중국 최초로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천하의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천하의 수레 궤도까지 통일한 것도 바로 그였다. 한 마디로 말하여 진시황은 오늘날 거대 중국의 초석을 다진, 중국사 전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중국을 '차이나(China)'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이나(China)'라는 말 자체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Chin) 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니까.

하지만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람들의 입에다 재갈을 물렸고, 기분 내키는 대로 그 막강한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희대의 폭군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아방궁과 만리장성 축조 등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삶을 완전 도탄에 빠뜨렸던 몹쓸 황제이기도 했다.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 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파천황(破天荒)의 대공사였음은 현재 발굴 중인 그의 무덤의 입이 딱 벌어질 규모를 통해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경지치(文景之治)! 한나라 문제(文帝)와 그를 이어받은 경제(景帝) 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문제는 진시황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태평성대를 구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농업을 장려하는 데 솔선수범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을 대폭 삭감하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여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한 현군(賢君)이었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무덤이 진시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길손들은 문제의 무덤에만 절을 하고 간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자가 한둘이 아니듯이, 폭군이면서 현군의 탈을 쓴 통치자도 많다. 그러나 살아서 펄펄 뛰던 권력이 무덤 속으로 이사를 하고 나면, 그 때는 죄다 판명 날게다. 백성들이 무덤에 절을 하고 가면 현군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닐 테니까.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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