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토론을 즐기는 인도인 동갑내기 친구 토마스 싱 박사는 동북아시아 역사 전공자로 동양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 출신임을 자랑한다. 싱 박사가 "인도는 무려 3억3천 개나 되는 신화가 탄생한 곳이야"라고 자랑하기에 내가 이렇게 반문했다. "그 많은 신화가 다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데?"라고 하자 싱 박사는 "고대 힌두 경전에 실려 있어. '베다'는 지식이라는 뜻이야. 말하자면 선사시대부터 인도 조상들이 축적해온 지식의 보고인 셈이지"라고 했다.
"그게 화석화된 구닥다리 지식이 아닐까 싶은데." 발끈하는 그를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그리스신화 얘기를 들려줬다. "그리스는 유럽 대륙 변방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이지. 그 작은 나라에 자리 잡은 올림포스산은 인도의 히말라야산에 비하면 규모가 100분의 1에도 못 미쳐. 그 올림포스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신화가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인류 보편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어. 그런데 세계 최대 거산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3억3천 개나 된다는 인도신화가 인도 바깥 세계에는 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지 알아?"라고.
싱 박사가 묵묵부답으로 나를 응시하기에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에서 발생한 신화를 로마제국에서 받아들여 신화 주인공들 이름을 로마 언어인 라틴어식으로 바꾸어 로마제국 전역에 확산시킨 사실을 아는가?" 싱 박사는 그거야 알지. "올림포스산의 주신 제우스를 라틴어식 주피터로, 사랑의 신 에로스를 라틴어식 큐피드로 고쳐 부르는 등 완전 번안했지"라고 하기에 필자는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신화 주역 신들의 이름만 바꾸었을 뿐, 내용은 전혀 바꾸지 않았단 말이야". 왜 그랬겠어?
그리스인들이 로마인들보다 지적으로 더 많이 깨친 걸 인정한 때문이지. 그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은 그 후에도 로마 통치 아래 소아시아에서 발생한 기독교에 대해 위협을 느끼며 박해했지만 끝내는 기독교 교리를 인정하여 국교로 삼았어. 로마제국 멸망 후 로마제국 영향 아래에 있던 유럽 여러 나라들의 기세가 세계 6대륙으로 뻗어가면서 인류에게 인류의 보편 지식을 보급시켰어. 그 결과 오늘날 세계 베스트셀러 도서 1위를 성경이 차지하고, 2위를 그리스로마신화가 차지했어.
잠자코 듣고 있던 싱 박사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반격을 시작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인류문명사를 반영하는 인류보편신화이고, 인도고대신화는 화석화된 구닥다리 신화란 말인가?"라고 하기에 필자는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동양문명 발상지인 중국과 인도처럼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인류 여명기 이전부터 전해온 낡은 신화들이 겹겹이 쌓이기만 했지 로마제국처럼 객관적인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걸러지고 수정되는 일이 없었거든. 나의 유년 시절만 해도 주변에 온갖 신들이 득실거렸어. 동구 밖 고목에는 마을수호신, 공동우물에는 우물지킴이신, 장꼬방신 등이 도처에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이처럼 원시시대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수많은 신들이 있었지. 지금도 후진국에서는 별의별 신화가 있다더군. 솔직히 말해 3억3천 개 신화가 수록된 힌두 경전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인도인들이 의식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고대 동양문명 발상지였던 인도가 한때 변방이었던 일본이나 한국의 관광객들에게 후진 문명의 찌꺼기를 보여주는 구경거리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봐.
이에 발끈한 싱 박사가 "인도가 뭐 일본이나 한국의 구경거리 나라라고?" 따지고 들기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주인 없는 비쩍 마른 소가 대도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떤 집 문간에 이르면 집주인이 전생의 인연 운운하며 반겨 들여 칙사 대접해 보내는 기현상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뭔가? 또 인도인들이 성스러운 강이라고 여기는 갠지스강변 화장터에서 시체 태우는 광경을 바라보며 강 건너편에서는 집단 목욕을 하고, 그 바로 아래서는 오염된 강물을 성수라며 담아가는 모습이 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뭔가?"라고 필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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