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청와대가 기자들에게 "'우한폐렴'으로 불리는 감염증의 공식 명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참고바랍니다."라는 공지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진 후 관련 언론 보도 및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반응이 잇따랐다.
◆우한폐렴 VS 신종 코로나?
이를 두고 중국 내 특정 지역을 질환 이름에서 지칭하는 게 정부로서는 외교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언론의 표현을 제한하는 맥락에 있다는 비판이 나왔고, 청와대가 문자메시지로 '강제'한 게 아니라 그저 '권유'한 것일뿐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아울러 한 언론 보도(경향신문 2020년 1월 29일 '[여적]'우한 폐렴' VS '신종 코로나'')에서는 (WHO(세계보건기구)의 권고 기준을 들어)"우한 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며 "보수는 '우한폐렴'으로, 진보는 '신종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공지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은 받아들이고, 문재인 대통령을 반대하는 측은 일부러 쓰지 않는 모양새라는 얘기이다.
물론 이 기사의 주장과 상관 없이 '그냥' 우한폐렴을 쓰거나 신종 코로나를 쓰거나 그 외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논란에 우한폐렴 식 '지역명+질환명'의 선례를 찾는 관심도 커졌다.
◆메르스는 지역명 붙은 코로나 바이러스
우선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뿌리가 같은 베타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급된다.
메르스(MERS)를 풀어 쓰면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즉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다. 맨 앞 글자 '중동'(中東)이 바로 이슬람 국가들이 모인 아시아 남서부 및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을 가리킨다.
유래는 이렇다. 2012년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했고 이후 중동에서 잇따라 발생해서다. 발견지 및 유행지가 질환명 맨 앞에 붙는다는 게 우한폐렴과 같다.
◆사스는 지역명 안 붙은 코로나 바이러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역시 베타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사스(SARS)도 풀어 써 보자.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이다. 맨 앞 글자 '중증'은 증상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지역명이 아니다.
그런데 사스는 2003년 홍콩에서 발견됐고 이후 홍콩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홍콩(Hong Kong)의 첫 글자인 'H'가 붙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10여년 뒤인 2019년 12월 1일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견됐고 또한 우한에서 확진 및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 전염병에는 Novel Coronavirus(2019-nCoV), 즉 노벨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벨을 우리말로 바꾸면 '신종'이다.
◆WHO 2015년부터 "낙인 효과 우려, 지역명 피해라"
2015년 WHO는 낙인 효과를 우려해 질환명에 지역명을 넣는 것을 피하도록 권고했다.
메르스는 이 권고 이전에 발생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이 권고 이후에 발생했다. 그러니 문제될 게 없는 작명인 것.
그러나 2019년 일본에서 발생한 '일본 인플루엔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인플루엔자(Influenza)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좀 더 친숙한 단어로 '독감'이 있다.
인플루엔자는 줄여서 '플루'라고도 한다. 익숙한 단어가 바로 '신종플루'이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만들어진 바이러스이다. 2009년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 이후 201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동시기 한국에도 전파된 바 있다.
그런데 2019년 일본에서 발생한 것도 바로 신종플루이다. 혹시 10년 전 유행한 신종플루와의 구분을 위해 일본 인플루엔자라는 작명이 이뤄진 것일까.
즉, WHO의 권고는 지킬만한 것이긴한데, 10년 전 신종플루와의 구분이 필요하다면, 일본 인플루엔자 같은 작명이 오히려 실용적일 수 있는 셈이다.
◆"중국 우한에서 원인불명 폐렴 잇따라"
그런데 사실 우한폐렴은 처음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아니었다.
언론 보도를 살펴보자.
2019년 12월 말부터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집단으로 발병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뉴시스 2019년 12월 31일 '中 우한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 집단 발병…당국 긴장' 기사)
이어 사스로 의심된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연합뉴스 12월 31일 '중국서 원인불명 폐렴 잇따라…'사스' 우려 확산(종합)' 기사), 과거의 사스 사태를 떠올리며 우려하는 분위기 역시 기사로 잇따라 전해졌다.(국민일보 12월 31일 '中 우한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 속출… '사스' 우려도' 기사)
그보다 앞서 11월에는 중국 내몽골 지역에서 흑사병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흑사병에 이어 사스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도 나왔다.(중앙일보 2020년 1월 1일 '中서 원인 모를 폐렴 퍼진다···11월 흑사병 이어 사스 공포' 기사)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발원지로 우한에 위치한 화난수산시장 등 야생동물 시장이 지목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기사가 앞서 나오기도 했다.(KBS 1월 2일 '폐렴 속출 中시장 휴업 돌입…"야생동물 도살 판매 의혹"' 기사)
결국 WHO가 조사에 나섰다는 기사도 연달아 나왔다. (YTN 1월 2일 '中, '원인 불명 폐렴 발생 시장 휴업...WHO도 조사 나서' 기사)
이때까지만 해도 해당 질환에 붙은 단어는 '폐렴'이었다. 그리고 '원인 불명' 및 폐렴이 유행하고 있는 장소인 '우한'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이후 우한이 아니라 바깥 홍콩에서 처음으로 폐렴 증세를 겪은 여성이 격리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1 1월 3일 '제2의 사스 공포, 우한 방문한 홍콩 여성 폐렴 증세에 병원 격리' 기사)
그러면서 우한에서는 집단 폐렴이 계속 발생했고, 이에 우리 정부 질병관리본부는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이름은 없었고, '우한' '원인불명' '폐렴'이 질환을 가리키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서울경제 1월 3일 '원인불명 폐렴 집단발생한 중국 우한 입국자 검역 강화' 기사)
그러면서 우한발 폐렴이 중국과 가까운 싱가포르와 대만 등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기사도 나왔다.(한국일보 1월 5일 '중국 우한 발 폐렴 확산…아시아 전역 비상' 기사) 이때도 폐렴의 원인은 알 수 없었고, 다만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확실했기에 '우한발 폐렴'이라는 수식이 가능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첫 의심 환자(36세 중국 여성)가 나왔을 때만 해도 '원인불명'과 '우한'은 함께 '폐렴' 앞에 붙었다.(아시아경제 1월 8일 '中우한 원인불명 폐렴, 국내서 증상자 1명 발생' 기사)
줄곧 쓰이던 '원인불명'이 규명되기 시작한 시점은 1월 9일이다. 이날 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판정됐다고 밝혔다.(SBS 1월 9일 '중국 원인불명 폐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정 판정' 기사) 앞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모두 6종인데, 여기에 포함된 사스와 메르스와도 다른 새 코로나 바이러스이며, 따라서 백신 개발 등과 관련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나왔다.
◆'신종' 수식은 메르스에도 붙었다
그런데 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명칭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12년 WHO가 "사스와 유사한 새로운, 즉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SBS 2012년 9월 24일 'WHO "사스와 유사한 신종 바이러스 발견"' 기사) 당시 영문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바로 'Novel Coronavirus', 즉 'nCoV'였다.
이후 이어진 기사들에서는 사스와 유사하다거나 '제2 사스'라는 등의 설명이 잇따랐다.(MBC 2012년 9월 26일 '제2 사스 오나?‥신종 바이러스 출현에 긴장' 기사)
이게 바로 메르스가 됐다. WHO가 2013년 5월 명명했다. 초기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렸지만. 이후 사우디를 비롯한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메리트(UAE) 등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중동'(Middle East)이라는 지역명의 약자 'ME'와 질환명(Respiratory Syndrome)의 약자 'RS'가 합쳐진, MERS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신종 코로나'는 과도기적 이름
결국 현재 우한에서 발생한 폐렴 전염병, 즉 우한폐렴을 설명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과도기적 이름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의 '신종'이 나타날 경우 이름이 겹쳐 자칫 혼동을 야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름은 이제부터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즉 2019-nCoV는 WHO가 붙인 잠정 명칭이다. 공식 명칭은 향후 국제바이러스 분류위원회(ICTV)가 결정하게 된다. 2012년 임시 명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2013년 공식 명칭 메르스가 됐듯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어떤 이름이 붙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서 중동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 메르스가 만들어졌듯이, 우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점을 근거로 '우한RS'라는 이름이 만들어질 수 있고, 또는 '중국RS'라는 명칭이 나올 수도 있으며, 세계적으로 퍼진 까닭에 '월드RS'라는 이름도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WHO의 권고에 따라 지역명을 비롯해 인명, 동·식물명, 문화·산업·직업 등 관련 명칭을 배제한 '어떤RS'도 가능하다. 물론 WHO의 권고는 어디까지나 권고이지 강제는 아니기 때문에, 일본 인플루엔자처럼 앞서 발생한 신종플루와 구분하기 위해 지역명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로서는 초기 언론 보도를 감안하면 우한에서 발생한 폐렴이라는 설명이 과거 이력을 따져 이해하기 가장 쉽다. 우한폐렴이 먼저 나와 익숙해졌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뒤늦게 나온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도기적 이름이다.
또한 가장 좋은 것은, 발생 및 유행한 지역(우한)과 주요 증상(폐렴)과 학계의 규명(새로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정보를 모두 담는 것이다. 가령 두 단어를 병기하는 것이다. 당장 언론 독자 내지는 국민에게는 이게 이해하기 가장 좋다.
예컨대 '윤창호법'처럼 말이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2건의 법안으로 구성돼 있다. 이걸 윤창호법이라 간단히 표기할 수도 있고, 2건의 법안명 그대로 상세히 표기할 수도 있고, 또는 '특가법 개정안과 도로법 개정안'으로 줄여서 칭할 수도 있고.
아울러 윤창호법이라고 쓰고 괄호() 치고 안에다 저 긴 이름을 넣을 수도 있고, 모두 가능한 표현 방법이다. 어떤 경우 간단한 표기도, 또 어떤 경우 원활한 설명도, 그리고 둘 다도 가능하다.
뉴스를 통해 원인불명+중국 우한+폐렴으로 인식해 온 저 전염병이 이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를 그때의 우한폐렴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반대로 우한폐렴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즉 2019-nCoV란 임시 명칭으로 불린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정식 명칭이 나와 사스처럼 메르스처럼 굳어질 것이다. 이때의 정식 명칭에 대해서도 "처음엔 중국 우한에서 폐렴이 많이 발생해 우한폐렴이라고 불렀지, 그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도 했어, 2019-nCoV 말이야"라며 잘 모르는 이가 있다면 설명을 위해 덧붙일 수 있다.
이런 실용성 앞에서, 메르스도 썼던 임시 명칭 하나만 두고 공식 명칭이라며, 이해를 도와줄 다른 이름들은 주변부로 쫓아버리는 말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우한폐렴이라는 말이 우한이라는 지역이나 우한 사람들을 혐오하는 효과를 만드는 지는 그렇다는 주장은 많은데 딱히 근거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어디서'라는 지명과 '무엇이'라는 전염병의 주요 증상을 묶은 하나의 정보로 인식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생각이 많은 게 아닐까.
오히려 우한이라는 지역이나 우한 사람들을 혐오하는 현상은 누군가 바이러스 숙주 야생동물을 함부로 먹고 병을 퍼뜨려서라거나 또 누군가 우한에서 왔다거나(또는 다녀왔다거나) 등의 정보를 삐딱하게 접하며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WHO의 권고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라 그게 합당하냐 과잉이냐 불충분하냐 등을 각자 여기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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