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 열정 23년 희망 100년…경북개발공사의 발자취
〈2〉 경북도청 신도시 어디까지 왔나
〈3〉 경북 발전 이끄는 경북개발공사
〈4〉 이런 도시 어때요… 한국서 만나는 유럽마을들
〈5〉 해외에서 찾는 신도시 활성화 전략

올해로 경상북도개발공사가 창립 23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경북개발공사는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1997년 7월 출범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인원은 5배, 자산은 18배로 커졌다.
경북개발공사는 경북지역에서 택지개발과 산업단지조성 등 공영개발사업을 하는 공기업이다. 전신은 1989년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으로 조직된 경북도의 사업소인 '공영개발사업단'을 승계해 주식회사 형태로 발족했다.
23년이란 시간 동안 경북개발공사는 외형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조직 내부적으로도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했다.
이러한 성장은 평탄한 길에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내리막을 겪었지만 끝내 성공궤도에 들어선 경북개발공사의 발자취를 되돌아 본다.
◆IMF란 바다에 던져진 공사, 치열한 몸부림으로 생존
경북지역은 경북개발공사가 뿌리내리기에 좋은 토양은 아니었다. 개발사업은 개발수요가 있어야 가능하고 수요는 인구유입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은 가속화 돼 농어촌이 많은 경북지역 인구는 계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경북개발공사가 출발할 때는 달성군마저 대구로 편입된 상황이었고, 그나마 산업도시 구미와 포항, 대학도시 경산에서 택지개발 수요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들 지역에서 8년 동안 공영개발사업단이 사업을 벌여 마련한 재산이 공사 설립의 바탕이 됐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직원 26명, 자산 470억원으로 시작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수영 발차기 동작도 배우기 전에 바다에 던져진 격이었다.
공영개발사업단으로부터 업무를 인수하고 겨우 조직의 외형을 갖추자 IMF 위기를 맞은 것이다.
구미 옥계 2·3지구와 구미 구평지구 등 공영개발사업단으로부터 공사 중인 상태로 넘겨받은 사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보상비와 공사비는 투입됐으나 분양이 되지 않아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신규 사업을 벌일 수 없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체 자금이 들지 않으면서 대행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위·수탁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미분양 택지에 국민주택자금 융자를 받아 적은 자금으로 사업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사업도 시작했다.
사업다각화 노력의 하나로 관광휴게소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통해 경북개발공사는 몸부림 끝에 스스로 수영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이렇게 생존을 위한 분투 속에서 우리나라는 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났고 경북개발공사도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세계금융위기로 혼란…기적같이 찾아온 신도시 조성 기회
2001년 경산시 옥산지구 내 신축 사옥에 입주한 경북개발공사는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며 기분 좋은 시작을 맞았다.
경북개발공사의 발목을 잡고 있던 미분양 택지도 전 직원들의 분양 노력에 힘입어 점점 해소돼 갔다.
그렇지만 자산 부족으로 안동의료원 장례식장을 비롯한 위·수탁 사업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다. 2003년이 되자 구미 구평2지구와 경산 신대부적지구 등 택지개발사업을 재개했다. 또 경주 외동2산업단지 개발에도 착수, 첫 번째 산업단지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이 기간에 경북개발공사는 정원이 54명으로 늘어나고 활발한 위·수탁 사업, 택지·산업단지개발사업, 사랑의 봉사대 발족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본격화했다.
CI(기업 로고)와 BI(브랜드 로고)도 제정하고 균형성과표 기반의 성과관리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경영합리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노동조합이 설립돼 노사평화선언이 이뤄지는 등 노사문화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고정적 수입원 확보를 위한 영천 청통골프장 사업을 추진했으며 경북 김천혁신도시 건설사업을 LH와 공동 시행하는 등 사업도 순조로웠다. 경영수지가 호전됐고 지방공기업 평가도 2007년에는 '나 등급'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돼 경영수지가 곤두박질 쳤다. 그 와중에 사업비가 2조원이 넘는 도청이전 신도시건설사업을 LH가 거부해 경북개발공사가 단독 시행자로 지정받았다. 우려 속에서 사업비 마련을 위한 사전조치를 하고 조직개편을 하는 등 신도시사업을 위한 총력을 기울였다.
◆부단한 노력 이제는 새로운 도약으로
2011년부터는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사업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일로 시작됐다. 도청이전특별법 개정, 1/4분기 흑자 전환, 공사채 발행 승인 등의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모두 해결했다. 또한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수탁함으로써 도청 신도시 사업 중 흑자기조 유지의 발판을 마련했다.

토지보상법 개정으로 보상가가 예상보다 낮게 책정돼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한 가운데서도 18개월 만에 1천90만9천90㎡에 대한 보상을 완료했다. 이에 힘입어 수년간의 보상전문기관 지정 노력도 결실을 봤고, 보상업무 수탁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냈다.
1단계 조성공사도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며 완공돼 2016년 2월 공사완료 공고로 마무리됐다. 신도시 84%, 임당역세권 100% 등 분양도 호조를 보여 2016년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나온 23년은 매 순간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함께 만족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저렴한 택지와 산업용지, 공공임대주택 등을 공급하면서도 사업 지속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운명처럼 맡게 된 경북도청 신도시 사업은 1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위기를 기회로 만든 실증 사례이면서 수익성과 공공성을 함께 만족시키는 사업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300만 도민의 숙원사업이면서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의미가 큰 데다, 이를 통해 경북개발공사가 우량 공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북개발공사는 2단계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면서 신 성장동력사업 발굴을 위한 모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한 지금의 위상에 걸맞게 공공정책사업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공헌활동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공기업에 숙명과도 같은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과정이다.
안종록 경북개발공사 사장은 "20여 년 만에 직원 130여 명, 자산 8천500여억원(2019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 25% 수준의 우량 공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이러한 성장은 새로운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고 공사는 도민의 복지향상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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