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둔 4관왕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겨 있을까. 이것은 전 세계의 대중문화산업은 물론이고 우리네 영화 산업 또한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기생충'이 거둔 아카데미 4관왕 그 각각의 의미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주인공은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각본상에 이어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작품상까지 모두 4관왕을 거두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제작자인 바른손 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그리고 책임PD인 이미경 CJ 부회장은 각 부문에서 수상할 때마다 그 수상에 담긴 남다른 의미들을 소감에 담았다. 각본상을 수상했을 때 봉준호 감독은 "영광"이라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의미를 담았다.
이 영화가 나왔던 지난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기생충'의 각본상 수상은 한국영화 100년의 성과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각본상이란 결국 언어나 문화적 차이 같은 경계 또한 뛰어넘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은 대부분 예상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이 부문의 본래 이름이 '외국어 영화상'이었다는 점이다. '외국어 영화상'이라는 상의 지칭은 아카데미상이 스스로 영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로컬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영어권을 외국어 영화로 간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이번에 이름을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꾼 첫 번째 수상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는 과거 봉준호 감독이 미국의 한 매체기자가 던진 "한국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영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왜 한 번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같냐"는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이라고 했던 의미심장한 답변에 대한 아카데미의 응답이라고 해석된다. 아카데미 역시 이제 로컬이 아닌 글로벌로 간다는 걸 국제장편영화상이라는 이름의 변화와 '기생충'의 수상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감독상에서 수상소감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부분에서 경쟁했던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등의 후보들을 하나하나 거론해 존경의 의미를 전했다. 이것은 영화라는 문화적 지대가 국적과 상관없이 그 글로벌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또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곽신애 대표가 말한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졌다"는 표현은 이번 '기생충'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된 사실이 하나의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는 걸 담아낸다.

◆'기생충'의 무엇이 글로벌한 인기를 이끌었나
그렇다면 도대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가진 어떤 요소들이 이러한 놀라운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됐을까. '기생충'은 이미 알다시피 '반 지하'로 대변되는 우리네 특수한 삶의 공간이나 정서가 투영된 지극히 로컬 색채를 가진 영화다. 그런데 이 로컬 색채를 가진 영화가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 같은 다소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도 공감대를 가지게 됐던 건 그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으로 그려내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은유와 상징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반 지하와 지상 그리고 지하로 나눠지는 그 실제 우리네 현실에서 쉽게 찾아지는 계급적 공간들을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양극화의 은유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결국 독특한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그걸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연출해냈다는 게 '기생충'이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둔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래서 향후 한국영화들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영화들은 로컬과 글로벌이 나뉘어진 채 미국 같은 글로벌 시장은 '넘사벽'으로 여기는 면이 있었고, 글로벌로 가기 위해서는 할리우드로 들어가거나 손을 잡아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그것이 우리 스스로 지워놓은 한계이고 그건 언제든 쉽게 넘을 수 있는 거라는 걸 보여준 면이 있다.
이제 로컬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으며 인용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라는 말처럼 이제 가장 로컬인 것이 가장 글로벌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의미가 여기에는 내포되어 있다.

◆'기생충' 아카데미 석권과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
'기생충'의 성과는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에도 어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인다. 한국영화는 그간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양극단으로 나뉘는 경향이 짙었다. 즉 칸느영화제나 베를린영화제 그리고 베니스영화제 같은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예술영화로서 평단과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대중성까지 확보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또 정반대로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작품들이 나와도 그만한 작품성까지 인정하게 되는 영화 역시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국제영화제 수상작은 재미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이런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는 양극단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그런 경계가 별 의미 없다는 걸 일련의 작품으로 보여준 바 있다. '괴물'이 칸느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후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중적 성공을 거둔 바 있고 '옥자'나 '설국열차' 역시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끌어안았던 전적이 있다. 이번 '기생충'도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까지 석권했다.
작품성이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상업영화로서의 대중성도 갖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기생충'은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향후 한국영화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싶다. '영화제 영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영화라는 타이틀을 넘어서서 이제는 우리는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한국영화가 설 자리가 있다는 걸 '기생충'의 성과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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