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가사의 인도] 인도 하층민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필자와 흉금을 트고 대화를 나누며 백년지기처럼 친숙해진 인도 출신 동갑내기 친구 토마스 싱(Thomas Singe)에게 어느 날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절교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도의 가문에 대한 참고 자료가 눈에 띄어 살펴보던 중 '싱'(Singe)이라는 말은 '사자'라는 뜻이며 Singe을 성씨로 쓰는 사람은 인도에서 최고 명문 혈통 집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동갑내기 인도 친구인 토마스 싱이 이전에 자기는 인도에서 최하층 신분 출신이라고 고백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토마스 싱이 나에게 신분을 속인 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자마자 "친구의 성이 Singe이 진짜 맞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나에게 더욱 배신감이 들게 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실은 Singe은 내가 외국에서만 쓰는 성씨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귀담아듣건 말건 상관 않고 다음과 같은 독백을 늘어놓았다.

"한국 친구, 내 말 좀 들어보게. 내가 친구에게 내 출신 성을 속인 것은 맞아. 그러나 그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고 절반은 사실이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자 이에 내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돌아앉아 버렸다. 그래도 그는 같은 말로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실은 나는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어머니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Singe이라는 성을 가진 지체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조선시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 문득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났다. 바로 돌아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필자가 한국의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도 서자라서 적자와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토마스 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지만, 인도에서는 최상 계급 아버지의 성뿐만 아니라 얼굴도 영영 모르고 살아야 한다. 만약 자기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성을 들어 바깥에 나가 들먹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어. 그러니 그런 사생아가 외국으로 나갈 길만 생기면 외국으로 가서 지체 높은 부계 성씨를 마음 놓고 쓰지."

그리고 인도인 친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 친구는 내가 거짓말한 것에 대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인도에서는 하층민들의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라는 인식이 의식의 바탕에 깔려 있어"라고 말했다.

인도인들이 말하는 생계형 거짓말이란 "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의 잡상인, 접객업소 안내원, 질병치료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도인들은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걸고 쉽게 친해지게 되며 친밀감을 느껴 무슨 약속을 하면 백발백중 그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만나 전에 약속한 일을 왜 지키지 않았는지 물으면 '약속할 때는 기분이 좋아서 했는데 그 기분이 사라지니 약속 지킬 마음이 안 나더라'고 말하면 끝이다"고 말했다.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인도 주재 영국총독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Dr. Leaper가 인도의 자연부락에 인구조사를 가면 주민들이 거짓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혀가 내둘린다고 했다. 보통 30~40명 단위의 대가족이 함께 사는데 무슨 혜택을 주기 위해 인구조사를 할 때는 38명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무슨 의무를 지우기 위한 인구조사를 하면 3분의 2로 줄어든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누구누구는 군에 갔으며, 누구는 병들어 죽었고, 누구는 가출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두고 그는 식민지 근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며 인도의 생계형 거짓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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