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코로나 환란, 우리 삶을 바꿀까?

19일 오후 코로나19 대응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들이 근무 교대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9일 오후 코로나19 대응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들이 근무 교대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김교영 경북본사 본사장
김교영 경북본사 본사장

소나기가 그치면 해를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비가 소나기가 아니라면, 기후변화에 따라 연중 내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불행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이렇게 인식해야 할지 모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다. 210여 국가에서 수백만 명이 확진되고, 십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 확산은 실물경제 위축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로 치닫고 있다. 기계가 멈추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큰 불길은 잡혔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해외 감염자 유입과 산발적인 지역사회 감염이 잇따르고 있다. 백신 개발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희망고문'일지 모른다. 백신이 개발돼 2~3년 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그땐 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5~6년 주기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에는 170만 가지 이상의 바이러스들이 야생동물을 숙주로 생존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생태계를 훼손하는 순간, 바이러스는 인간을 역습한다. 메르스, 코로나19가 그런 사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값진 교훈을 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욕망의 전차'를 잠시 세웠다. 그 멈춤에서 우리는 '질주의 삶'을 되돌아본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지향하는 사회구조, 경쟁과 효율만을 좇는 사회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가져본다. 우리 이대로 살아가도 될까?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이타심이 작동하는 사회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지켜봤다. 어쩌면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발현된 책임과 배려, 의료진의 눈물겨운 사투, 공무원의 투철한 사명감, 마스크 한 개라도 나눠 쓰려는 빛나는 시민의식은 심장을 뜨겁게 했다.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는 설파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 모든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이타주의를 통해서 21세기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코로나 사태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시장자유주의에서도 정부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재난상황에서 공공의료, 사회보험, 공적부조의 가치는 빛났다. 이념의 틀에 갇힌 기본소득은 공론의 장에 올랐다.

총선은 끝났다. 다시 코로나 국난 극복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정부와 21대 국회는 시민사회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뉴 노멀의 핵심은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경제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회구조와 노동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드라이브 스루 검사'라는 '새로운 표준'을 만든 것처럼 지금은 담대함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경제활동, 학교생활, 종교생활, 정치집회 등 모든 일상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학교 수업 혁신(온·오프라인 수업 병행, 2부제 수업), 노동환경 혁신(재택근무 및 유연근로제 확대, 사무실 및 작업장 구조 개선) 등을 통해 밀집도와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환경, 어떤 집단이 감염병에 취약한지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바이러스는 만인에게 평등하지만, 사회적 환경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2020 봄은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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