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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그리운 아버지의 장날

금오렌트카 이광락 대표의 부친인 이종훈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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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장날 아침에는 집안이 분주해 진다. 며칠 전부터 동네에는 나락(벼)을 내는 집이 많아서 아버지가 장에 팔러 갈 쌀이 삼륜차 트럭 한 대 가득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농가의 벼를 매집하여 방앗간에서 도정한 후 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셨다. 장날에는 청송에서 영천으로 내려오는 버스가 만원이라 읍내에서 이십리 쯤 되는 우리 동네를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일이 많았다.

비포장 국도에 대목장날이면 걸어서 장보러 가는 사람도 꽤 있었다. 통 크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늘 택시 대절을 하셨고, 장날 아침에는 읍에서 달려 온 빈 택시가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용케도 장날이 일요일이면 가끔씩 나도 따라 갈 행운을 얻을 수 있어서, 국회의원 얼굴이 초상화처럼 벽에 붙어 있는 달력에 크레파스로 장날을 표시를 해 두었다.

시골에 농산물 외에는 별다른 먹을거리가 없었던 시절에도 우리 집은 미식가인 아버지 덕분으로 장날마다 산해진미를 맛 볼 수 있었다. 제삿날이나 할머니 생신이면 동해안에서도 귀한 대왕문어를 아버지의 몫으로 챙겨 놓은 어물전 사장님의 환한 얼굴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부산, 울산에서 쌀장사 하시는 친구 분들이 장에서는 살 수 없다면서 챙겨 오시는 큰 생선,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해산물 등, 냉장시설도 변변치 않고 포장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에 장터에서 물건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나의 역할도 중요한 때가 있었던 같다.

아버지는 방앗간 일을 하시다가 엄마가 계시는 가게(전빵)에 들러서 댓병 소주를 맥주 글라스 한잔 가득 원삿으로 물 마시듯 들이키시고, 소금 두어 톨을 안주로 입안으로 넣으시곤 하셨다. 아버지는 소금도 통깨를 넣고 가마솥에 구워서 드실만큼 조리에 관심이 많으셨다. 저녁마다 우리 집은 아버지 친구들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장 봐 온 재료를 가지고 새벽부터 장만해서 요리하시고, 술 좋아하고 인심이 좋으신 아버지가 게를 찌는 날에는 작은 잔치가 열렸다. 경부고속도가 없었던 70년대 중반까지 동해안에서 대구로 가는 길목인 영천에는 어물시장이 꽤 컸었고 특히 오뎅(어묵) 공장이 많이 있었다. 장날 밤 막차가 끊어진 시간에 멀리서 큰 불빛이 비치면 쌀 값이 좋아서 기분 좋게 취하신 아버지가 택시를 타고 오셨다. 트렁크에는 가게에서 팔 물건과 함께 먹을 것이 가득 하지만 제일 기다려진 것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오뎅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여름 방학식 하던 날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가끔식 따라 가던 장날에는 아들 자랑도 많이 하시고 들러는 곳마다 돈 계산까지 하라시던 아버지, 큰 덩치에 힘이 장사였지만 술에는 이기지 못하셨던 것 이었다. 오늘은 어버이날,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를 기억하며 나는 여행을 하면 재래시장에 들러 반찬 거리나 특산물을 꼭 사 온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우리집 냉장고가 분주해진다. 곁에 있거나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게 반찬을 나누어주는 기쁨을 즐긴다.

글로벌 금오렌트카 이광락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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