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0년 전 매일신문] 지금과는 또 다른 대학가 선거 천태만상

창간 74주년을 맞는 매일신문 자료실의 한 켠에는 옛날 신문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펼쳐보니 세로쓰기와 한자의 미로 속에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여러 일들이 실려있었습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바깥 여행을 하지 못하는 대신 옛날 활자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50년 전으로 돌아가 1970년 매일신문에 실린 대구경북과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저와 함께 탐험해 볼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 한 가지 알려드리고 시작할게요. 당시 매일신문은 월요일에는 발간되지 않아서 월요일자 신문이 없습니다. 따라서 월요일자 신문은 일요일에 발간된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1970년 6월 8일도 월요일이었네요. 따라서 오늘(2020년 6월 8일) 첫 여행의 시작은 1970년 6월 7일자 매일신문으로 시작합니다.

1970년 6월 7일 매일신문 1면에 실린 해군 방송선 피랍 기사들. 매일신문 DB
1970년 6월 7일 매일신문 1면에 실린 해군 방송선 피랍 기사들. 매일신문 DB

▲해군방송선 북괴에 피랍(1970년 6월 7일·1면)

현충일 다음날이기도 한 1970년 6월 7일에 다뤄진 가장 큰 사건은 해군방송선이 북한으로 피랍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날 매일신문 1면 머릿기사 '海軍放送船 北傀에 披拉(해군방송선 북괴에 피랍)'에 따르면 5일 오후 1시49분쯤 서해 연평도 서북방면 6㎞ 해상에서 어선단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방송선이 북한고속포함 2척의 기습을 받고 피랍됐습니다. 해군선이 피랍된 것은 건군 이래 최초라고 합니다. 이날 매일신문 1면과 3면은 해군방송선의 북한 피랍 상황과 북한의 도발 실상을 매우 자세히 실었구요, 이번 사건을 '北傀의 侵略根性 드러낸 야만 糾彈'이라고 한 공화당과 신민당의 논평도 실었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저로서는 이 사건 기사를 읽으며 '북한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1970년 6월 7일 매일신문 6면에 실린
1970년 6월 7일 매일신문 6면에 실린 '대학가의 선거, 정화할 수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 당시 대학가 학생회 선거의 난맥상이 자세히 실려 있다. 매일신문 DB

▲대학가의 선거, 정화할 수 없나(1970년 6월 7일·6면)

이날 매일신문 6면에는 현재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大學街의 選擧, 淨化할 수 없나'인데요, 대학 학생회 선거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의 선거자금이 들어가고, 이를 메꾸기 위해 학교 재정 담당자와 야합하는 등 부패상이 난무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학생회는 학교 측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학생들은 학생회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고 자연스레 관심을 잃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년 전 대학가의 학생회 선거가 너무 치열해서 탈이었다면 지금의 대학가는 너무 무관심해서 탈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서 연장투표, 재투표가 일어나는 경우는 일상이고 심지어는 학기가 시작됐는데도 학생회장을 못 뽑아서 선배들이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점입니다. 바로 '지성을 잃은 학생들 스스로의 반성과 각성'입니다.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동안 이것 하나만 변하지 않았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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