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 광복 후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 풀지 못한 숙제다. 잊을 만하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되풀이되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국내에도 활개를 친다. 이제라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이들이 꼭 있다.
6일은 현충일이었다.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을 기리는 날이다. 이 와중에 '친일 파묘(破墓·무덤을 파내는 것)' 논란이 불거졌다.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 인사들의 묘역을 없애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6·25 전쟁 영웅'이라는 백선엽(99) 전 장군을 두고 말이 많다. 친일 전력(그가 설립, 운영했던 사학재단 선인학원의 총체적 비리가 아니라) 때문에 눈을 감아도 현충원에 안장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
간도특설대는 일부 고위 간부 외엔 조선인 위주로 운영한 특수부대. 일제의 괴뢰 정부인 만주국 소속이었다. 유능했지만 잔인함으로도 악명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군은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 2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책 '간도특설대'(김효순 지음)에 따르면 백 전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일본어판)에는 그곳에서 복무했던 내용이 나온다. 그는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 독립군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죄는 없었다. 다만 동포에게 총을 겨눈 건 사실이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사죄, 반성은 없다.
일제에 부역하던 이들은 해방 후 미 군정 치하에서 권력 집단으로 모습을 바꿨다. 미 군정은 통치 편의를 위해 이들을 청산하는 대신 기용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한몫했다. 1949년 6월 6일 무장경찰들이 반민특위에 난입, 무력화하도록 조치했다. AP통신에 제 입으로 밝힌 얘기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은 모두 56명(일본군 20명, 만주군 36명).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해 파악한 숫자란다. 만주군 중 14명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들은 모두 해방 후 국군으로 임관했고, 반공의 최전선에 섰다. 이 중 백 전 장군을 포함해 46명이 별을 달았다. 친일 행위자들이 반공주의자로 간판을 바꿔 승승장구한 셈이다.
보수, 우파라는 이들은 백 전 장군을 반공에 앞장선 민족 원로라 추앙한다. 미래통합당은 그가 마땅히 서울 현충원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본과 싸운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에 견주며 영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침 7일은 홍 장군이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날. 홍 장군의 유해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
이 갈등은 지난해 서훈 논란을 빚은 약산 김원봉의 경우와 묘하게 대비된다. 의열단 수장이었던 그는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무장 독립투쟁을 하다 해방 후 북한 정권에 몸담았다. 일제와 싸우다 북한으로 간 약산은 거부하면서 일제를 위해 총칼을 잡다가 북한과 싸운 백 전 장군은 품는다? 친일은 반공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문제라는 건가. 반공으로도 지우지 못할 죄 아닌가.
일제의 폭정에 맞선 항일 행위는 자신의 목숨에다 가족, 집안, 친구까지 파멸로 몰아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난을 감내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섰던 이들을 미화해선 안 된다. 나중에 사회 지도층이 됐다면 더욱 그렇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런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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