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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지났지만 고통은 여전" 임상수 6·25 참전 유공자회 달서구지회장

임상수 6·25 참전 유공자회 대구시지부 달서구지회장이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tong@imaeil.com
임상수 6·25 참전 유공자회 대구시지부 달서구지회장이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tong@imaeil.com

"9426263. 7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군번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19일 대구 달서구 이곡동 6·25 참전 유공자회 대구시지부 달서구지회에서 만난 임상수(89) 지회장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총성은 잊혀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도 전투기의 무차별 총성을 들은 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은 그날의 총성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임 지회장은 "1950년 전쟁이 발발한 뒤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하고 집을 떠난터라 배고픈 6명의 동생들을 위해 전쟁이 펼쳐지고 있던 집으로 돌아가 보릿쌀을 꺼내다 인민군에게 붙잡혔다"며 "곧장 그들을 따라 말을 끌고 낙동강으로 가게 됐는데, 이때 아군의 전투기가 지나가며 북한군들을 사살했다. 다행히 낙동강을 넘어 그들에게 도망쳐 목숨을 건져 대구로 도망쳤지만 그후로 귀가 잘들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에 도착한 그는 1951년 7월 여름 어느날 입대해 제주부터 강원도까지 수많은 도시를 돌며 전장을 누볐다.

임지회장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밥을 먹기위해 들렀던 곳이 징집 장소였다"며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입대한 뒤 날아드는 총알과 포탄에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대구에서 기초훈련을 받은뒤 제주도 7연대 129중대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뒤 군생활을 시작하게됐다"며 "당시 전쟁 중이다보니 전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강원도 인제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포탄 파편에 오른쪽 다리를 다치게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파편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던 중 선임들이 다가와 지혈을 해줬는데, 군복의 팔부분을 찢어 파편을 감싸더니 '쑥'하고 파편을 당겨 빼줬던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들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부산과 서울 등 부대를 옮겨가며 군생활을 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전쟁 당시를 생각하면 식은 땀이 흐른다. 전투모 하나 제대로 없이 참여한 전장에서 머리위를 스쳐지나가던 총알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 지회장은 "포탄과 총성이 빗발치는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두려움과 피해는 크고 길다"며 "수많은 청년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나라인만큼 우리의 희생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참전용사는 모두의 영웅이며 생에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나라를 잘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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