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의 시즌이다. 매년 여름이면 서늘한 납량 영화가 그리워지는 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현실이 더 공포스럽기 때문일까. 극장가에 공포영화가 실종됐다.
13일 개봉한 '반교:디텐션'(감독 존 쉬)은 그런 와중에 개봉된 대만 공포영화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그 많은 공포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대만의 광포한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가 자행한 상처를 그린 특이한 영화다.
1962년 대만. 국민당의 계엄령 시대(1949~1987). 경비총사령부의 감시로 언론이 통제되고, 자유가 말살된 시대다. 반공을 내걸고 체제에 반대하는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것이 일상이 된 곳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몇몇 학생들은 금기된 타고르의 시를 읽고, 간디의 명언들을 노트한다. 최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인 비밀 독서모임이다. 은밀하지만 평화롭던 이들은 어느 날 누군가의 밀고로 끔찍한 고문을 받는다. 도대체 밀고자는 누구일까.

이 영화는 2017년 출시된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대만의 어두운 역사에 공포를 녹여낸 이 게임은 대만 1위, 전세계 3위 판매량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게임의 설정을 충실히 스크린에 옮겨 지난해 대만에서 개봉돼 흥행수익 1위를 거두며 돌풍을 일으켰다. 제56회 금마장 시상식에서도 신인감독상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이 영화의 매력은 공포의 대상이 역사라는 점이다. 숙청과 박해, 고문과 폭행이 난무하던 그 시절, 그 자체가 공포이다. 군복과 같은 교복을 입고, 줄을 맞춰 걷고,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간첩 신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학생들이 느끼는 어둡고, 음산하고, 질식할 것 같은 기운은 떨쳐낼 수 없는 악몽이다. 그리고 영화는 챕터를 바꿔 본격적으로 학교를 죽음의 도가니로 만든다.
잠에서 깬 여고생 팡루이신(왕정)은 아무도 없는 학교에 홀로 남는다. 벽에는 상갓집 등불이 걸려 있고, 교실도 잠겼다. 이때 하급생 남학생 웨이중팅(증경화)을 만난다. 학교는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듯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두 사람은 흐릿한 촛불에 의지한 채 자취를 감춰버린 선생님과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끔찍한 환영과 학교를 떠도는 유령들이 두 사람을 위협하고 단서를 파헤쳐 나갈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에 둘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폭력과 억압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공포의 대상이 된 영화로 '여고괴담'을 꼽을 수 있다. 숱한 상처와 죽음이 쌓여 성장한 공포이다. 또 스페인의 역사를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오필리아의 세 개의 열쇠', '악마의 등뼈' 등도 역사의 기억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반교:디텐션'은 일단 그런 점에서 여느 공포영화와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만과 유사하게 반공 교육을 받고, 교련복에 M1 고무총으로 수업을 받았던 한국 중년 관객들은 그 공포에 공감이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될까. 그러나 '금서'를 소지한 것만으로도 철창에 갇히는 죄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영화는 마치 게임처럼 퍼즐을 풀어나가는 기교를 보여준다. 원작 게임에 맞게 카메라의 시선이 입체적이다. 패닝샷(동체에 맞춰 돌려 촬영하는 방법)에 트래킹(동체에 맞춰 이동시키면서 촬영하는 방법) 등 다양한 기법으로 관객이 플레이어가 되어 스크린 속을 헤매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강의실이 갑자기 처형장으로 변해간다거나, 군복을 입은 거대한 괴물이 따라오고, 처형과 고문이 기억과 환영으로 재조립되는 빠른 편집 등 시청각적 몰입감을 선사하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배우들이 모두 낯선 대만의 신예들이어서 더 실감이 난다. 팡루이신 역을 맡은 왕정은 비밀스러운 내면을 감춘 앳된 여고생을 잘 소화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기술적 한계인지 특수효과가 거칠고 조잡한 것이 흠이다. 또 공포감을 극한까지 끌어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듯한 것이 공포영화 팬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대만의 어둡고 아픈 역사를 공포로 승화(?)시킨 점이 특이하고 색다르게 다가오는 영화다. 13일 개봉. 103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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