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伏)날 복(福)짓는 밥상 이야기
유난히 긴 장마가 끝이 날 무렵 한차례 태풍이 지나고 보니 올여름은 긴 장마로 삼복더위란 말이 무색해질 만큼 큰 더위 없이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버렸다.
그래도 여름 더위가 체면이라도 차리려는 듯 비가 그치고 절기상 처서가 지나도 덥고 습한 기운이 영락없는 여름이다.
예로부터 삼복더위는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을 의미하는 시기로 복(伏)날은 개조차 더위로 인해 사람 옆에 엎드리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 시기에 얼음을 나누어 주었고 백성들은 산과 계곡에 들어가 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또한 현재와 같이 복날 복달임 음식을 잘 먹어야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고 믿으며 최고의 보양식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불편한 진실은 오늘날 최고의 복달임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백숙(삼계탕)은 서민 중에서도 하층민이 먹는 복달임 음식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쇠(金)의 기운을 가진 복날 평온한 흙(土)의 성질을 지닌 닭은 쇠(金)의 기운을 눌러 더위를 물리쳤으며 여명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는 밤새 활동하는 귀신을 쫓아내 질병을 예방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삼계탕은 복날 음식으로서의 조건은 모두 갖추었다.
그렇다면 왕의 복달임 수라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랐을까?
그것은 바로 민어탕(찜)이다. 민어는 이름만 백성民 고기漁 자를 쓰는 백성의 고기일 뿐 예로부터 상류층만이 즐긴 고급 식자재였다.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는 여름철 복달임 음식에 민어탕은 일품으로 취급되는 요리이며 사람마다 맛있다는 부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생선이다. 민어살을 먹기 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바로 찬물에 헹궈 탱탱하게 내놓는 껍데기는 꼬들꼬들한 식감에 고소한 맛까지 첫맛으로서 일품이다. 두 번째는 부레다. 유일하게 부레를 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이 민어인데 민어 부레는 고래 힘줄처럼 질겨서 질겅질겅 씹다 보면 담백하고 고소한 치즈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민어 맛을 아는 어부들은 쫄깃하고 기름진 민어 뱃살과 꼬릿살, 지느러미를 먼저 먹는다. 그리고 등살로 전을 부쳐 묵은지에 싸서 먹으면 그야말로 별미다. 마지막으로 머리와 회 뜨고 남은 살과 뼈를 넣고 끓이면 민어탕이 되는데 바로 이 민어탕이 조선 시대 임금님의 복달임 음식으로 오래도록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종횡무진 신나고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민어는 클수록 맛이 있다. 그래서 두세 가족이 넉넉하게 먹으려면 10킬로그램짜리는 떠야 민어 좀 먹어봤다는 소리를 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왕의 수라상에 올려진 다소 놀라운 복달임 음식으로 증편이 있다. 증편은 멥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빻아서 따뜻한 물과 막걸리로 묽게 반죽하여 천천히 오래 발효시켜 쪄내는 음식이다. 증편은 삼복 절기 떡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보신하기 위해서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멥쌀에 술을 넣고 발효시킨 까닭에 삼복더위에 잘 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편이 왕의 수라상에 복달임 음식으로 올려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증편이 가진 풍미와 식감 때문이다. 비록 겉면이 탱탱하지만, 증편은 한입 깨물어 보면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약간의 술내가 입안 가득 알코올의 청량한 풍미를 준다. 그와 동시에 발효에 의해 생성된 상큼한 신맛은 침샘을 자극해 입안 가득 침이 분비되면서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돌아오게 만드는데 그저 그만이다. 또한 침 분비로 인해 소화력도 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니 복달임 음식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절기상 입추가 지났고 여름의 끝자락인 말복만 남았다 할지라도 장마 끝에 삼복 무더위가 한창이다. 이럴 때 더위에 기운 잃은 가족들에게 내 손으로 정성껏 보양식을 만들어주는 센스 만점의 당신이 되어보는 건 어떠실는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