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공정한 인사가 정부 능력 높이는 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2017년 말 일본에서 '손타쿠'(忖度)라는 말이 유행어 대상에 선정되었다. 그해 2월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이 관련된 사학재단에 국유지를 헐값으로 매각하고, 부인의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후 국유지 헐값 매각과 관련된 결재 문서의 위조 문제가 드러나고, 담당 공무원의 자살이 이어지며 아베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스캔들로 발전하였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자신과 부인의 관여가 밝혀지면 총리직뿐만 아니라 의원직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사학재단의 이사장이 외국특파원협회와의 기자회견 도중에 재무성 공무원들이 아베 총리에 대해서 '손타쿠'한 결과라는 답변을 하면서 널리 유행하게 된 말이다. '손타쿠'란 위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으나 아랫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서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작년 8월 관련 공무원들이 모두 불기소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무엇보다 관료조직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된 것이 뼈아프다 하겠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의 제공, 경제활동의 활성화, 정당한 법 집행과 분쟁 해결, 공정한 과세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정부 능력의 원천이 국민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관료조직이 총리만을 위해서 조직적인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확인한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부정과 거리가 멀고, 정치권력에 야합하지 않고, 박봉에도 국민과 국가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일본의 관료들을 바뀌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일본의 공무원들은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신분과 지위의 보증을 받고 있고, 직무와 승진에 대해서도 정치의 관여 없이 각 부처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인사 제도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저해하는 수직적 행정의 폐해와 관료들이 국가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조장하는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2014년 고위 공무원 인사를 일원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국가공무원법 일부가 개정되었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총리를 보좌하는 내각관방 산하에 내각인사국이 설치되었다.

새로운 인사 제도는 총리와 총리를 보좌하는 관방장관과 보좌관들이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점이 특징이다. 각 정부 부처의 부장이나 심의관 이상의 간부에 대한 인사에 있어서 총리에 의한 적격성 심사가 도입되었다. 적격성 심사는 수시로 이루어지고, 심사 결과에 따라 간부 후보자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제외될 수도 있고, 각 부처의 간부는 후보자 명부에 있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 제도의 개혁으로 일본의 공무원들은 승진하고, 더 나은 직무를 맡기 위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총리와 총리의 주위를 둘러싼 정치적 측근들과의 양호한 관계 구축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의도로 인사 제도를 개혁했지만, 의도와 달리 3년도 지나지 않아서 총리와 총리의 정치적 지원자들의 의중을 조직적으로 '손타쿠'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인사 제도 개혁 이전에는 맡은 일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고, 승진을 하거나 좌천을 당하거나 했지만, 이제는 권력자의 의중을 잘 파악해서 국가와 사회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그들의 이익이 되고, 원하는 일을 해야 승진하거나 중요한 직무를 맡게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은 관료조직의 정치화는 한정된 국가 자원을 꼭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고 낭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막대한 예산을 쓰게 되는 인플루언스 비용(Influence Cost)을 발생시켜, 정부의 능력을 크게 저하시킨다. 아베 마스크가 일본 정부 능력 저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일본보다 빠르게 관료조직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정권에 따라 능력과 관계없이 정권 입맛에 맞추는 사람과 권력자와 같은 출신 지역, 같은 대학 사람을 등용해 온 한국 정부의 능력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행정의 혼선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정부의 무능 때문에 난제들만 쌓여간다.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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