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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그럼 나경원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나경원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 매일신문 DB
나경원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 매일신문 DB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나는 조국처럼 살지 않았다." 나경원 전 의원의 말이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대꾸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은 나경원 일가처럼 살지 않았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은 나경원처럼 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조국 일가처럼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조국 사태 때 그들이 뭐라고 변명했던가. 조국 일가를 처벌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을 처벌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조국 일가의 비위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비위라 우기더니, 이제와서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은 나경원처럼 살지 않았단다. 그럼 국민들이 조국 일가처럼 살았단 말인가?

나 전 의원이 아들의 입시에 '엄마 찬스'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는 그의 아들 김씨가 제1저자로 등록된 논문에 대해서 그가 "연구를 직접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해 발표문도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다만 제4 저자로 등록된 논문에 대해 경미한 연구윤리 위반이라는 판정을 내렸을 뿐이다.

그에 반해 조국 전 장관의 자식들이 대학에 제출한 스펙들은 거의 모두 날조 혹은 허위였다. 그래서 기소가 된 것이다. 대학입시에 '부모 찬스'를 동원하는 반칙이 대한민국 상류층 사이에는 널리 퍼진 관행이라고 한다. 설사 그렇다 쳐도 조국 일가처럼 그 일을 위해 문서까지 위조하는 예는 많지 않을 게다.

신동근 의원은 말한다. "조 전 장관 관련 수사는 전격적으로, 전광석화의 속도로 진행돼 피의자 소환조사 없이 기소가 이뤄졌다. 70여 건의 압수수색이 동시다발로 이뤄졌다." 하지만 피의자 소환 전에 기소를 한 것은 공소시효 때문이었고, 압수수색이 많았던 것은 워낙 혐의가 많았서였다. 무려 스무 개가 넘지 않는가.

당장 입시 관련 비리만 해도 관계된 학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동양대, 서울대, 고대, 연대, 카이스트, 부산대 등등. 입시에 사용된 표창장과 증명서의 거의 전부가 위조 혹은 허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70여 건의 압수수색은 검찰 수사의 무리함이 아니라, 조국 일가가 벌여온 불법의 가공할 규모를 증명할 뿐이다.

신 의원은 투덜댄다. "나 전 의원 관련 수사는 고발된 지 1년 동안 주구장창 고발인 조사만 진행했고, 압수수색은 통 기각 되는 등 번번이 불발됐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경우 '고발 자체가 무리였다'고 판단할 게다. 압수수색 영장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에서 내주는 것. 법원에서 영장을 괜히 기각했겠는가?

게다가 나 전 의원에 대한 수사를 하는 곳은 추미애 장관의 친위대로 통하는 서울중앙지검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장관의 명령으로 검사장 잡으려고 독직폭행까지 저지른 곳 아닌가. 그런 충성파들이 신청한 영장을 법원에서 기각했다면, 그들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고 봐야 할 게다. 이제 사법부마저 비난할 셈인가?

나 전 의원의 행위는 물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남들 다 그런다 하더라도 공인이라면 제 자식에게 서민의 아이들이 누리지 못할 기회를 줘서는 안 됐다. 기여도가 적은 논문에 저자로 등록시킨 것 또한 그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검찰에서 "주구장창 고발인 조사만 진행"한 것은 이 도덕과 법률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을 게다.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기소할 수는 없잖은가. 고발인 조사를 해도 딱히 단서가 안 잡히니 피의자를 부르지도 못한 것이다. 영장이 기각된 것을 보니 장관 친위대도 그 간극은 뛰어넘지 못한 모양이다.

검찰에서 나경원에 대한 수사를 무마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에게 무슨 권력이 있다고. 편파적이라 비난을 받는 판에 검찰의 입장에서도 차라리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기소해 형평성의 그림을 갖추는 게 외려 나을 게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깨문'들은 고장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무한히 반복한다. "그럼 나경원은?"

나경원의 가벼운 혐의도 못 참을 정도로 도덕에 민감한 인간들이 조국 일가가 저지른 무거운 비리들은 목숨을 걸고 비호한다. 그들의 뇌는 내게 신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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