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가을 단풍과 ‘팩트풀니스’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가을은 단풍이다. 높은 하늘과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가을엔 단풍이 으뜸이다. 녹음을 자랑하던 잎사귀들이 하나둘 빨강 노랑으로 물드는 모습은 신비에 가깝다. 그런데 초록의 잎사귀들이 어떻게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것일까? 식물의 배설물 주머니인 '액포' 속에 단풍의 아름다운 색깔이 담겨 있다. '액포' 속에는 카로틴, 크산토필, 타닌 같은 색소와 안토시아닌과 당분이 들어 있다. 이 다양한 성분들이 자연스럽게 작용해 단풍의 고유한 색상을 만들어간다. 가을비를 충분히 머금은 단풍은 빛깔이 더 아름답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자신에게 쌓여 있던 노폐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다.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서 아름다움이 나온다.

가을 단풍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 인간은 언제 저렇게 아름다워질까? 지난해 나온 '팩트풀니스'란 책이 우리 자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일생 동안 꼭 읽어야 할 다섯 권의 책에 넣었고, 빌 게이츠는 추천을 넘어 미국의 모든 대학원 졸업생들에게 전자책으로 선물했다. 그런데 이 책은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사실(fact)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팩트 없는 사회, 진실성을 상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이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한다. 왜 전쟁과 폭력이 생기고, 문제는 더 심각해져 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며, 빈곤층은 더욱 늘어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이제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고, 그것은 '팩트풀니스' 즉 '사실에 충실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고 있다. 그래서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란 용어까지 등장한 것이다. 사람은 인지하고 싶은 것만 인지하고 기대하는 것만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살아간다. 사실이 결여된 세계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하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도 결국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을까?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했다. 빌리 조엘은 "정직함, 정말 외로운 단어예요/ 모두가 진실되지 못해요/ 정직함, 참 듣기 힘든 말이에요/ 그리고 내가 가장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에요"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 가을에 다시 '성경 말씀'을 소환해본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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