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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시와 함께] 능성동 우편함 /박태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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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동 고갯마루 작은 마을길 돌아가면

잡초 우거진 빈 집 지댓돌에 기대앉은 우편함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이사를 가면서도 따라가지 못하고

날마다 대문간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오래전에 온 듯한 편지 두어 통이

함 속으로 들어가다 반쯤 걸친 채

비바람 맞으며 늙어가고

혹시나 누가 치워 버릴까봐

팔이 긴 넝쿨이 꼭 잡고 있는 낡은 우편함

풀이랑 벌레랑 같이 살고 있다

사실 이 '우편함'은 사람이다. 이사를 가면서도 따라가지 못한 사람. 코로나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올 리 없는 자식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노인이다. 기력 쇠한 우리들의 어머니고 아버지다. 오랫동안 말을 안 해서 두 눈이 더 퀭해진……. 노인들의 몸은 씻어도 씻어도 냄새가 난다. 노인들의 몸 냄새는 '기다림'이 더께가 앉아서 생긴 냄새다. 기다림의 냄새는 그렇게 역하고 독하다. 그런데 그 냄새 맡는 거 잘 견뎌야 효자가 된다.

시골길을 가다 무작정 아무 마을이나 들러 빈집 기웃거리기는 내 여행 기록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이다. 대개는 무너져가는 그 빈집을 일으켜 세울 궁리로 내 머리는 꽉 차 있지만, 아서라 한 가계가 지지고 볶으며 살다 간 집을 최대한 적은 금액으로 구입해 수리를 해보려는 그 속셈은 그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돼먹지 못한 사치다. 이른바 세컨 하우스라는 것에 대해 나는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 빈집만 보면 그저 먹으려고 드는 친구들을 나도 여럿 봤다. 허물어져 가는 시골집은 그간의 잘못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불효 자식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옳다.

'함 속으로 들어가다 반쯤 걸친 채/ 비바람 맞으며' 바래 버린 편지 두어 통을 꺼내 읽는 일은 아프다. 세상의 모든 집배원은 꼭 편지를 우편함 깊숙이 밀어 넣지 않고 반쯤 걸쳐 두고 간다.

시인 유홍준
시인 유홍준

시인 유홍준: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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