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추상화가 박두

추상화가 박두가 그의 화실에 걸린 작품 앞에서 화가로서의 길과 미술의 방향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다.
추상화가 박두가 그의 화실에 걸린 작품 앞에서 화가로서의 길과 미술의 방향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다.
박두 작
박두 작

"내 나이 오십이 넘어 그림을 다시 그리려고 마음먹었다. 화가의 삶에는 저마다 독특한 삶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예정된 길을 꾸준히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그 결말에 도달할 것이다. 오직 그림에만 정열을 받쳐 좋은 작품을 많이 하도록 하소서."

추상화가 박두(62)가 미술대학 졸업 후 유학, 기업, 대학교 등 돌고 돌아 52살 때 전업 작가로 나서면서 틈틈이 적은 작업일기 중 일부다. 따지고 보면 작가는 이제 겨우 본격적인 그림 경력 9년째의 새내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포부는 국내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로 향해 있다.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주택가 반지하 1층에 자리한 99㎡크기의 화실은 그가 9년째 추상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공간이다. 벽마다 100호 이상의 대작에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어울린 선 굵은 추상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박두는 대작 위주로 작업하다보니 주로 캔버스를 벽에 걸어놓은 채 서서 하는 작업이 많다.

영남대 미술대학 회화과(79학번)를 나와 동대학원(86학번)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구상보다는 추상에 관심이 많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싶어 했다.

"구상 그림은 중고시절 미술부에서도 많이 수련했죠. 저의 성격상 남들이 하지 않는 창의적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은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처음부터 화가의 길로 가기 보다는 일단 우회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박두는 1989년 화성산업에 취직, 디스플레이와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던 중 199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공간연출디자인을 3년간 공부한 후 1994년 귀국했다. 이어 그는 보성주택 인테리어 사업부에서 2001년까지 일하면서, 1997년부터 2014년까지 경운대 멀티디자인과 겸임교수와 개인 인테리어 사업을 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졸업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어느 날 로댕의 어록에서 '화가는 바위를 파고드는 물처럼 느리고 조용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읽고 일단은 생계에 힘을 써보기로 했죠. 또 결혼할 때 집사람에게도 오십 살이 넘으면 그림에만 전념하겠다는 말을 했고요."

2012년 박두는 이윽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하기도 작심했다. 그의 나이 52살 때였다.

이듬해인 2013년 작가는 그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들고 당시 대구 혜원갤러리를 찾아가 전시를 제의한다. 이렇게 해서 성사된 그의 첫 개인전인 이 전시의 제목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때 작가의 화풍은 현대적 감각의 구상계열로 꽃과 화병을 그린 정물화가 위주였으며 다양한 화면과 색감을 바탕으로 관람객의 호응을 얻어냈다.

"작업실은 꼭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오랜 시간 작업실에서 머물며 그림을 바라보고 생각을 한다. 하나의 생각이 다음 생각을 가져오듯이 그렇게 나의 작업도 발전한다. 나는 두꺼운 마티에르 그림보다 얇은 그림을 더 좋아한다. 완벽한 완성을 위해 조금 더 손을 댔다면 자유스러움과 신비스러움과 우연의 효과는 없을 것이다. 작품의 감성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 붓을 멈추는 순간 완성된다."

그의 작업일기에서 알 수 있듯 이제 그림은 그의 삶 자체가 됐다.

대학 때부터 관심을 두었던 박두의 추상계열 그림은 전업 작가로 나선 지 3년째인 2015년 도쿄 긴자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야생과 순수'전을 통해 본격적인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또한 다양한 실험적 화풍을 시도한 때이기도 하다.

그는 왼손을 이용해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반추상의 화면을 구축하는가 하면, 긴 작대기에 붓을 연결해 화면 위에 붓질을 하는 등 추상화가로서의 도약을 위한 노력과 과도기적 실험을 구사했다. 박두는 또한 이때 선보인 꽃 형태의 추상작품을 단초로 해서 이후 모든 추상작품의 제목에 '야생과 순수'라는 이름을 달게 된다. 재료는 주로 아크릴과 수성페인트를 섞어 사용함으로써 이 시기 그의 작품을 보면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도 보이고 있다.

"'야생과 순수'는 한편으로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상징합니다. 현대미술을 시작한 이래 제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국내보다 해외 전시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제 꿈은 국내보다 아예 해외에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싶었죠."

작가는 요즘 정말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림이 자신의 사고와 생활의 모든 측면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를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목표와 꿈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행복이 있다면 정신적으로도 축복받은 삶이다.

"그래서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죠. 제 작업은 미적 정서와 생각, 나의 인격과 창의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업 작가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그룹전은 많이 참여했으나 개인전은 몇 번 되지 않는 작가는 그의 꿈대로 올 12월 현재 독일 베를린 리테-하우스(Lite-HAUS) 갤러리에서 두 번째 해외 전시를 갖고 있으며, 이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본 미국 마티 마이굴리즈(Marty Maigulies) 갤러리 대표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2021년 12월 미 마이애미에서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또 2022년 베를린과 2023년 미국 뉴욕 전시도 계획되어 있다.

작가의 원래 이름은 박두헌이나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박두'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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