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의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아프가니스탄, 미시시피강 하류,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의 미국-멕시코 국경에 이르기까지 '장벽'을 키워드로 한 인류 문명사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이에 놓인 놀라운 연결고리를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로우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장벽이 문명을 가능하게 했는가?" "우리는 벽 없이 살 수 있는가?" "오늘날 장벽을 쌓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벽의 양면성, 즉 안전을 보장하는 폐쇄성과 교류를 촉진하는 개방성을 두루 강조한다.
책이 가리키고 있는 고대로의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성벽 안에서 남성들은 허약해졌다.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조차도 도시 바깥에서 온 엔키두의 야성을 꺼렸다. 성벽 밖은 위험으로 가득했다. 청동기 시대 어느 왕은 자기 신세가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고 한탄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성벽을 가리켜 '여성의 처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벽 안에 웅크린 채 불안에 떨었던 사람들이 바로 문명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를 토벽으로 둘러쌌다. 진흙은 점토판을 만드는 데는 유용했지만 벽돌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벽돌에서 진흙이 흘러내려 배수로를 막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벽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벽 쌓는 일이 고단하기로는 중국도 만만치 않았다. 한 여인이 사흘 밤낮을 통곡해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뒤에도 중국인들은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로마인들도 벽을 쌓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장벽으로 인해 로마 제국은 학문과 미술, 과학의 낙원이었다. 과장이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장벽에는 큰 수고를 들일만 한 가치도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들어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 유입,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각국이 유무형의 장벽을 쌓아 올림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통찰력은 인문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40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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