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나와서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싱어게인>은 이미 나온 오디션 형식들도 다시 끄집어내 하나의 귀결점으로 묶어낼 수 있다면 새로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무명가수라는 공통의 발판 위에 선 이들
'재야의 고수', '찐 무명', '홀로서기', 'OST', '오디션 최강자' 그리고 '슈가맨'까지. jtbc <싱어게인>은 시작을 알리며 한 명씩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무대에 이렇게 다양한 인물군의 카테고리를 나눠 놓았다.
언뜻 보면 이 여섯 개의 카테고리가 과연 <싱어게인>이라는 하나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묶여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싱어게인>은 부제로 달려 있는 '무명가수전'이라는 타이틀로 어찌 보면 제각각일 수 있는 이 다양한 인물군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여기 무대에 서게 된 71팀은 아예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거나(재야의 고수, 찐 무명), 팀으로 활동해 자신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홀로서기), 노래는 유명하지만 가수는 모르거나(OST, 슈가맨), 한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오디션 최강자)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무명가수'라는 공통의 발판 위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무명가수'라 칭하고 이름 대신 '○호가수'라고 프로그램이 이들 참가자들을 부르게 되면서 세 가지 효과가 생겨난다. 첫 번째는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되어 이름이나 사전 정보 같은 사항들과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당락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름 없는 가수라 더욱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는 정서적인 공감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효과는 '무명'이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정체다.
이 세 가지 효과가 시너지를 만들면서 <싱어게인>은, 숨은 실력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감 또한 높아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저들이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터넷에서는 '○호가수'라 불리는 참가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신상 털기'가 시작된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했는가가 네티즌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진다. 어떤 이들은 그걸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다른 이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시청자 참여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하게 된 것을 <싱어게인>은 이런 방식으로 소화해낸다. 방송이 그저 보여준 게 아니라 시청자가 참여해 찾아낸 이름은 그래서 더욱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 기막힌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숨기면 더 보고 싶고 찾고 싶은 심리가 만들어내는 무명가수들의 이름 찾기가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다니.

◆벌써부터 난리 난 무명가수들
벌써부터 출연한 무명가수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우리에게는 '화분' 같은 노래로 너무나 익숙한 러브홀릭 지선, 귀여운 5기통 헬멧 댄스로 거의 국민송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던 크레용팝의 초아,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창완과 꾸러기들에서 함께 활동했던 최고령 무명가수 윤설하는 통기타 하나 둘러메고 담담하게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불러 <싱어게인>의 진행을 맡은 이승기를 울렸고, 사고로 리세와 은비 둘을 먼저 보낸 레이디스 코드의 소정은 그 일 때문에 무대에서 웃을 수 없게 된 사정을 토로하며 임재범의 '비상'을 불러 심사위원들을 감동에 빠뜨렸다.
물론 숨은 고수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진짜 맛도 빠지지 않았다. '찐 무명'으로 등장해 한영애의 '여보세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편곡해 들려준 63호 가수 이무진이나, 박진영의 'Honey'를 마치 밀당하듯이 맛깔나게 부른 30호 가수 이승윤, 허스키한 목소리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담담하게 부른 10호 가수 김준휘, 헤비메탈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절규하듯 불러낸 29호 가수 정홍일 같은 출연자들은 벌써부터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듯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다채롭고 다양한 숨은 실력자들의 무대를 돋보이게 해준 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의 지나친 경쟁을 지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무명'이라는 똑같은 공감대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탈락한다 하더라도 아쉬움과 더불어 통과한 이들에 대한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팀 대결에서 맞붙었지만 떨어진 형님들을 생각하며 30호 가수 이승윤이 폭풍눈물을 보이고, 결국 탈락자로 지목된 정홍일을 이선희 심사위원이 '슈퍼어게인' 카드를 써 구제하는 대목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따뜻한 오디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jtbc표 음악 예능이 여기 다 있네
<싱어게인>은 <슈가맨> 제작진이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그 유사한 복고적인 성격이 부여되어 있다. 아예 '슈가맨'조를 구성하고 출연자가 누구일까 궁금하게 만든 후, 노래를 통해 반색하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방식은 그래서 <싱어게인> 안에 작은 <슈가맨>이 존재한다는 착시현상까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싱어게인>에는 그 외에도 그간 jtbc가 해온 음악예능 프로그램들의 색깔들이 겹쳐져 있다. 즉 음악 예능에 그가 누구일까 하는 추리적 요소를 넣은 건 <슈가맨>만이 아니라 <히든싱어>에서부터 시도됐던 것들이다. 물론 번호가 매겨진 박스 안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싱어게인>의 출연자들은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름만 '○호가수'라 지칭하며 가리는 것만으로 <히든싱어>의 추리적 요소가 힘을 발휘한다.
또한 <싱어게인>이 처음에는 혼자 부르고, 다음 경연에서는 팀으로 불러 대결하는 방식으로 경쟁의 틀을 갖고 오지만 하모니를 강조하는 그 구성은 <팬텀싱어>나 <슈퍼밴드>의 색깔을 떠올리게 만든다. 저마다 다른 색깔과 끼 그리고 장르적 바탕을 가진 가수들이 조합을 통해 어떤 음악을 선보일까 하는 기대감을 만드는 방식이다. 바로 이런 구성은 누가 이길 것인가에 집착하는 '경쟁적인 오디션'이 아니라 다음 무대는 얼마나 새롭고 멋질까를 기대하는 '따뜻한 오디션'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 관점으로 보면 <싱어게인>은 그간 jtbc가 해온 음악예능의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여러 차례 시도됐던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담아낸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이 서로의 좋은 유전자들을 섞어 탄생한 진화된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그래서 <싱어게인>은 잘 보이지 않던 무명가수들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심지어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던 오디션 프로그램 또한 '재발견'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한 물 갔다 여겼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니 신박해지는 그런 순간들을 이 프로그램은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